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중(對中) 관세 인하 가능성을 시사한 데 이어 인하 시점까지 언급하는 등 연일 중국에 유화적 메시지를 발산하고 있다. 중국도 대화 의지를 드러내면서 악화일로로 치닫던 미·중 충돌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다만 자원 무기화 등을 앞세운 중국이 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점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23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관세 정책에 대해 “현재 여러 국가들과 협상하고 있다. 향후 2~3주 동안 관세율을 (새로) 정할 것”이라면서 “(여기에는) 중국이 포함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중 관세 인하 시점은 “중국에게 달렸다”며 “중국과 공정한 거래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산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45%까지 올리며 강경한 태도를 유지하던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을 향해 거듭 화해의 손짓을 보내며 협상 토대 마련에 나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에도 대중 관세율이 “상당히 내려갈 것”이라고 언급했다. 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겠다. 우호적으로 접근할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민감한 코로나19 관련 문제 등은 거론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 먼저 앉으면서 양국 간 관세 협상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미국의 대중 관세가 지금의 절반 수준까지 인하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가 일부 중국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50~65%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이날 전했다. WSJ에 따르면 아직 최종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품목에는 35%의 관세, 국가 전략 품목에는 100%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 등이 논의되고 있다.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역시 이날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협상 가능성과 관련해 "우리는 중국에 대해 매우 낙관적이며, 특히 다른 모든 국가에 대해서는 더욱 낙관적"이라고 밝혔다.
다만 미국 관세 협상 책임자인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은 중국에 대한 일방적인 관세 인하는 없다며 다소 신중한 입장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 모두 현재 수준의 관세가 지속 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양측이 서로 관세를 인하하더라도 놀랍지 않다”면서도 양국 간 포괄적 무역 합의는 2~3년이 걸릴 수 있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문제는 양국이 각자 협상 카드를 쥐고 있는 가운데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지점을 찾을 수 있는지 여부다. 대표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틱톡 매각’을 대중 관세 인하 조건으로 언급한 바 있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라는 강력한 무기를 쥐고 있다. 중국이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관세에 맞대응하며 전투적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도 변수다. BBC는 이날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중국이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면서, 딥시크·비야디(BYD) 등을 앞세운 ‘기술 굴기’, 트럼프 1기 때의 교훈, 자원 무기화 등을 자신감의 원천으로 꼽았다.
처음부터 대화를 통한 협상을 강조해 왔던 중국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하는 수준이기는 하나 “대화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며 역시 협상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중국 외교부는 전날 “미국이 진정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위협과 협박을 중단하고 평등·존중·호혜를 기초로 중국과 대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도 이날 ‘중국과 미국에 필요한 ‘빅딜’은 무엇인가?’ 제하의 사설을 통해 “양국 간 '빅딜'이 성사되려면, 상호 존중·평화 공존·상생 협력의 토대가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매체는 또 “중국과 미국은 세계 최대 경제 대국이다. 양국 간의 경제무역 협력은 매우 방대하고 실질적이며 광범위하다. 수많은 주체가 참여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차이와 마찰이 존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면서 “핵심은 서로의 핵심 이익과 주요 관심사를 존중하고, 평등하고 진지한 대화를 통해 이견을 적절히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어쩌면 특별한 거래(a special deal)를 이룰 수도 있다”면서 ‘빅딜’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친 바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전략을 선회한 데에는 증시·채권 등 금융시장 혼란 때문도 있지만, 월마트 등 미국 소매업체들의 경고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블룸버그는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월마트, 타겟 등의 경영진과 21일 비공개 회동을 가진 뒤 하루 만에 중국에 유화적인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면서, 당시 기업들이 관세로 매장이 “텅텅 비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했고 이게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돌린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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