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 사업 부진과 중국의 레거시(구형) 메모리 저가 공세에 끼여 올해 1분기에도 반도체 실적 부진에 시달렸다. 2분기부터는 HBM 실적이 반등할 것으로 기대되는 가운데 4나노 이하 초미세공정 가동률을 높여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은 1분기 매출 25조1000억원, 영업이익 1조1000억원을 기록했다. 이 중 메모리 매출은 19조1000억원으로 전 분기보다 17%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부문별로 구체적인 실적을 공개하지는 않는다. 다만 업계에선 메모리에서 3조원대 영업이익을 낸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시스템LSI와 파운드리(위탁생산)에선 2조원대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풀이된다.
서버용 D램 판매가 늘어나고 낸드 가격이 저점에 도달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추가 구매 수요가 있었으나 HBM 판매량이 감소한 것을 상쇄하지는 못했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로 인해 삼성전자 HBM의 중국 수출 길이 막힌 것이 주요 이유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올 2분기부터 최신 HBM 수요가 늘어나며 반도체 실적이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날 실적 콘퍼런스콜을 통해 "HBM3E(5세대) 개선 제품은 주요 고객사에 샘플 공급을 완료했고 2분기 판매 증가가 전망된다"며 "HBM 판매량은 1분기 저점을 찍은 후 개선 제품 판매 확대와 더불어 매 분기 계단식으로 회복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만 주요 HBM 수요처인 엔비디아, 구글, 브로드컴 등을 경쟁사에 뺏긴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대중 HBM 수출이 어려워진 만큼 조속히 미국 빅테크와 인공지능(AI)칩 팹리스를 주요 고객사로 확보해야 삼성전자 DS부문 실적이 반등할 수 있다는 게 증권가의 공통된 평가다.
삼성전자는 내년 HBM4(6세대)부터 본격화하는 고객 맞춤형 메모리로 시장 주도권을 되찾을 계획이다. HBM4는 D램칩을 쌓아 올린 '코어 다이'와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연결을 위해 다양한 기능을 담은 '베이스 다이'로 구성되는데, 고객사 수요에 맞춰 두 칩셋을 한꺼번에 만들고 결합할 수 있는 종합 반도체 기업은 전 세계에서 삼성전자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HBM4도 고객사 일정에 맞춰 하반기 양산을 목표로 개발을 진행 중"이라며 "커스텀(고객 맞춤) 또한 복수 기업과 협의를 진행하고 있으며, HBM4는 2026년부터 판매에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HBM4E(7세대) 대응을 위한 필요 투자도 지속적으로 집행할 예정이다.
시스템LSI는 주요 고객사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 사업부에 플래그십 시스템온칩(SoC)을 공급하지 못했다. 하지만 고화소 이미지센서 등 공급 확대로 실적은 소폭 개선됐다. 퀄컴 SoC보다 떨어지는 성능을 개선해야 하는 게 올해 핵심 과제다.
문제는 아픈 손가락이 된 파운드리(위탁생산) 사업이다. 삼성전자는 "단기적으로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모바일과 PC 시장에서 수요 침체가 지속되고 있는 등 주요 고객사 수요 부진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다만 하반기로 갈수록 점진적인 수요 회복을 바탕으로 가동률이 개선돼 적자 폭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적자 폭을 줄이려면 가동률이 크게 떨어지는 선단공정을 정상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대만 TSMC와 치킨게임으로 인해 고객사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4나노 이하 공정에 대한 투자를 지속한 게 파운드리 대규모 적자의 원인이다.
퀄컴 등 일부 모바일 수요뿐 아니라 엔비디아, AMD 등 AI·PC용 칩 수요를 TSMC에서 뺏어와야 선단공정 가동률을 끌어올릴 수 있을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2나노 1세대 게이트올어라운드(GAA) 양산을 시작하고, 2나노 2세대 고객 수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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