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혜의 C] 기이하고도 익숙한…'인간 얼굴'에 대하여

  • 변화 거듭한 인간의 얼굴

  • 얼굴 뚫린 여성이 헤메는 '리미널' 등 눈길

  • 인간의 얼굴과 사회성에 대해 고찰할 기회

  • 혼자 있는 조각…현대인의 외로움 닮기도


리미널 2024
피에르 위그의 리미널, 2024 [사진=리움미술관] 

“세상사가 으레 그렇듯이 인간의 삶은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흔히) 타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마감한다. 혹자는 평범한 인간의 삶이 시작부터 끝까지 인간의 얼굴 이미지들로 채워져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인간 얼굴>(애덤 윌킨스 지음, 을유문화사) 중
 
인간을 구별하는 주요 특징은 얼굴이다. 대한민국에 사는 5000만명의 얼굴 5000만개는 제각각이다. 머리 하나에 눈 두 개, 코 하나, 입이 하나씩 자리 잡고 있는데, 놀랍게도 생김새가 다 다르다.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이 인간의 얼굴들은 도대체 언제,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유전학자이자 진화생물학자인 애덤 윌킨스는 그의 저서 <인간 얼굴>에서 “인간의 얼굴은 진화의 산물”이라고 단언한다. 수천만년에 걸친 긴 시간 동안 턱, 치아, 얼굴 근육, 피부 등의 변화를 겪으며 현재의 얼굴이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인간의 역사는 호미닌의 전체 역사에서 대략 3~4%밖에 차지하지 않는다”며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사피엔스에 이르는 긴 여정에서 우리가 아는 인류의 모습은 지극히 최근에 나타난 것이라고 말한다.

실제 예술작품을 보면 인간이 ‘인간 얼굴’에 관심을 나타낸 기간은 45억년에 달하는 지구 역사에서 해변의 모래알 하나 수준에 불과하다. 구석기 시대 동굴 벽화에는 말의 표정은 묘사됐어도, 인간의 표정은 드러나지 않았다. ‘비너스’라 불리는 고대 돌조각상 역시 머리는 형체만 있고, 고대 이집트 문명도 얼굴 옆모습 등 일부만 표현했다.
 
휴먼마스크 2014
피에르 위그의 휴먼마스크 2014 [사진=리움미술관] 

그러나 오늘날 인간의 얼굴은 ‘존재’와 맞닿아 있다. 국내에서 열린 두 전시 <피에르 위그: 리미널>과 <론 뮤익>에서는 이를 체감할 수 있다. 두 전시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존재란 무엇인가’라고 묻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두 전시를 관통하는 것은 ‘인간 얼굴’이다. 얼굴은 우리를 인간으로, 즉 사회적 존재로 서 있도록 한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실제 <인간 얼굴>은 인간 얼굴의 진화와 사회성이 깊은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문화가 지속적으로 성장했던 인간 정착지에서 더 많고 다양한 사회적 접촉이 발생했으며, 그 결과로 사회적 정보 교환을 위해 일반적인 얼굴 인식이 증가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이 결과적으로 일부 예술가와 장인들이 얼굴을 묘사하는 작업에 더 관심을 가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인간 얼굴은 사람과 사람을 잇는 도구인 셈이다.
 
침대에서 2025 혼합재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침대에서, 2025, 혼합재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껍데기, 원숭이, 그리고 인간
리미널 2025 전시전경 사진리움미술관 LESS 레스
<리미널>, 2025, 전시전경, [사진=리움미술관, LESS 레스]

리움미술관의 전시 <피에르 위그: 리미널>은 마치 인간 얼굴의 진화사 전체를 압축해서 펼쳐놓은 듯하다. 얼굴의 진화는 5억년도 더 전인 캄브리아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최초의 척추동물, 즉 턱뼈가 없는 작은 어류들이 등장했는데, 이것들은 얼굴과 눈 두 개, 입 하나 등을 지녔다. 그 이전까지는 머리와 입이 있더라도 얼굴을 가진 존재는 없었다고 한다. ‘캄브리아기 폭발’로 다양한 종의 동물들이 출현하고, 이후 영장류 등 오랜 기간의 진화를 거쳐 진원류, 호미닌, 호모사피엔스, 오늘날의 모습에 이르렀다는 것이 윌킨스의 설명이다.
 
약 6000만년에 이르는 긴 시간 동안 인간 얼굴은 변화를 거듭했다. 털은 점차 사라졌고, 주둥이는 작아졌다. 양쪽 눈은 가까워졌다. 20만년 전 호모사피엔스가 등장한 후에도 변화는 계속됐다. 인간의 얼굴과 침팬지의 얼굴을 구분 짓는 특징은 600만~700만년 안에 발생했고, 이는 전체 영장류 역사의 10% 남짓한 시간에 불과하다.
 
이런 배경을 알고 나면, <피에르 위그:리미널> 전시 속 낯설고 불완전한 얼굴들은 진화 과정 중 잠시 머물렀던 얼굴들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관람객이 “기이하다”고 말하는 피에르 위그의 작품들은 비틀거리며 나아간 인간 얼굴의 수많은 과도기적 상태와 묘하게 닮았다. 인류가 사라진 후가 아닌, 인류가 생겨나기 전, 얼굴이 얼굴이기 이전의 순간들을 엿보는 느낌이다.
 
얼굴이 뻥 뚫린 알몸 여성이 헤매는 ‘리미널’, 원숭이와 인간의 경계가 모호한 ‘휴먼 마스크’, 눈코입 없는 황금 마스크를 쓰고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이디엄’ 등은 무악어류에서 현대 인간으로 이어진 긴 시간 속 어딘가를 스치듯 지나갔을 법한 얼굴들이다. 거울과 스마트폰 등 기술의 발달 덕분에 지금의 인간 얼굴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작품들은 기괴한 ‘비인간’이지만 말이다.
 
‘나홀로 얼굴’ 론 뮤익…사회성이 사회성을 부른다
치킨맨 2019 혼합재료 크라이스트 처치 아트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치킨/맨, 2019, 혼합재료, 크라이스트 처치 아트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인간 얼굴>은 인간이 지금의 얼굴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강력한 힘은 사회성이라고 말한다. 축소된 주둥이와 피부가 드러난 얼굴 등의 변화는 표정을 잘 드러나게 했다. 얼굴이 일대일 상호작용에서 막강한 수단이 된 것이다. 실제 인간은 인간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할 때 수많은 표정을 짓는다. 하물며 전화나 카톡을 할 때도 마치 상대방이 앞에 있는 듯 무의식적으로 얼굴에 감정을 띠곤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열리고 있는 전시 <론 뮤익>은 인간의 얼굴과 사회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익숙한 인간의 얼굴을 다시 보는 기회를 준다.
 
이 전시의 조각 대부분은 혼자다. 무언가와 함께 있는 조각들은 홀로 있는 것만 못하다. 닭대가리와 마주 앉아 있어야 하고(치킨/맨), 몸은 밀착하고 있으나 서로의 눈은 바라보지 않는 같이 있으면서도 같이 있지 않은 (젊은 연인) 상태다. 혼자서 삶의 모든 무게를 견디는 것(쇼핑하는 여인)도 지치지만, 땔감을 가득 안고 있을 만큼 가진 게 많아도(나뭇가지를 든 여인) 역시 혼자는 외롭다. 죽어 해골만 남고서야 타인(?)과 함께 있게 되지만(매스), 늦어도 너무 늦어버렸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혼합재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나뭇가지를 든 여인, 2009, 혼합재료,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조각들의 표정은 익숙하다. 아침 지하철에서 무표정하게 서 있는 사람, 광화문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 등 스쳐 지나갔던 주변 얼굴들과 닮았다. 흔한 외로움이다. 실제로 한국인의 가장 큰 사망 원인은 고독이다. 10~30대의 사망 원인 1위는 자살, 40~50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론 뮤익의 벌거벗은 혈혈단신 조각에 드리운 외로움은 이 사회의 보통 얼굴이 되고 있다.
 
행복은 어디에 있을까. 책 <행복의 기원>(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은 “인간의 뇌는 온통 사람 생각뿐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The ultimate SOCIAL machine’이라며, “행복한 사람들은 '시시한' 즐거움을 여러 모양으로 자주 느끼는 사람들이다”라고 알려준다. 친구, 커피, 바흐, 좋은 책 등 소소한 ‘행복 압정’들을 일상에 흩뿌려, 삶 곳곳에서 이들 압정에 콕콕 찔리는 게 인간의 뇌에 맞는 행복을 찾는 방식이라고 조언한다.
 
당장 나만의 ‘행복 압정’이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면, 우선은 <론 뮤익> 전시를 끝까지 볼 것을 권한다. 전시 막바지, 론 뮤익이 정성스럽게 조각을 빚어내는 모습이 담긴 영상은 위로를 건넨다. 그가 하나의 작품에 오랜 시간을 들이듯, 모든 얼굴 또한 신이든 자연이든 억만겁의 시간을 거쳐 빚어낸 귀한 존재임을 속삭인다고 할까. 
 
쇼핑하는 여인 2013 혼합재료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쇼핑하는 여인, 2013, 혼합재료,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매스 20162017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매스 2016~2017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스틸 라이프 작업하는 론 뮤익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3 HD 영화 48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스틸 라이프: 작업하는 론 뮤익,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3, HD 영화, 48분 [사진=국립현대미술관]
 
인간 얼굴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번역 을유문화사
인간 얼굴. 애덤 윌킨스 지음. 김수민 번역. 을유문화사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
행복의 기원. 서은국 지음,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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