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 시대 불교 경전이 ‘소장 경위 불확실’의 이유로 보물 지정 코앞에서 탈락했다. 최근 ‘대명률(大明律)’이 도난품으로 밝혀지며 보물에서 제외된 사례와 같이, 국가유산청은 유물의 출처와 취득 과정을 더욱 엄격히 따지고 있다.
12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달 회의에서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59'의 보물 지정 여부를 심의했으나, 최종적으로 안건을 부결했다. 이 경전은 지난해 5월 보물로 지정 예고된 바 있다.
11세기에 판각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경전은 중국 당나라 승려 실차난타(實叉難陀·652∼710)가 불교 경전인 화엄경을 한역한 80권본 중 일부다. 국가유산청은 지난해 보물 지정 예고 당시 "현재까지 발견된 유일본"이라며 "희소성과 함께 서지학, 고려 목판 인쇄문화 측면에서도 학술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수개월간의 심사를 거쳐 동산문화유산 분과위원회는 소위원회 검토를 통해 "제출된 서류의 선후 관계가 맞지 않는 등 취득 관련 서류가 완전하지 않다"며 전(前) 소장자가 해당 문화유산을 매입한 사실을 입증하는 자료(계약서, 입금증 등) 등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국가유산청은 최근 문화유산의 출처 및 소장 경위에 대한 검증을 한층 강화하고 있다. 2016년 보물로 지정된 '대명률'의 경우, 도난품으로 밝혀지면서 보물 지정이 취소되는 전례 없는 조치를 받았다. 이 사건 이후 유물의 소장 경위와 정당한 취득 여부에 대한 국가유산청의 심의 기준은 더욱 엄격해졌다.
국가유산청은 제도 개선에도 나설 예정이다. 올해 하반기 중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현재는 국보나 보물 지정을 신청할 때 신청인의 자필 진술서만으로도 접수가 가능하지만, 앞으로는 보다 철저한 검증을 위해 박물관·도서관 등록대장, 매매계약서, 입금증 등 객관적인 자료 제출이 의무화될 전망이다. 또한 문화재 신청 과정에서 각 지자체가 해당 유물의 도난 여부를 직접 확인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도 도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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