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이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남북 고속철 사업과 관련해 '93조원, 5년 내 완공'이라는 베트남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제안이 민간에서 나왔다.
19일 베트남 현지 매체 증권경제잡지에 따르면 베트남 최대 민간기업 빈그룹(Vingroup)이 새로 설립한 빈스피드(VinSpeed)는 설립 일주일 만에 총 670억 달러(약 93조 원) 규모의 남북 고속철도 건설 계획을 정부에 제안했다. 빈스피드는 제안서에서 5년 완공을 목표로 내세우며, 동남아 고속철 시장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했다.
빈스피드는 빈그룹이 설립한지 일주일된 자회사로, 베트남 최초 민간 고속철도 개발 기업이다. 이번 제안은 단순한 구상 수준을 넘어, 빈스피드가 직접 “국가급 고속 인프라를 민간이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첫 사례로 평가된다. 특히 공기업 주도의 사업이 통상 수십 년 단위로 진행되어온 베트남 인프라 환경에서, 5년 내 고속철 완공은 사실상 '도전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빈스피드가 제안한 남북 고속철 프로젝트는 하노이-호찌민 간 열차 이동 시간을 현행 30시간에서 5시간 이내로 단축시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만약 실현된다면, 베트남 전역의 관광, 물류, 지역 균형 발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인프라가 낙후한 중부 및 내륙지역의 해외직접투자(FDI) 유입이 촉진되고, 인구·산업의 편중 해소와 고용창출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단순한 교통망 구축을 넘어 경제구조 자체를 개편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초대형 프로젝트라고 평가했다.
빈스피드의 파격적인 행보는 “누가, 어떻게 이 일을 해낼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특히 설립 일주일 만에 93조 원 규모의 프로젝트 제안, 5년 완공 계획 등은 국제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수치다.
참고로 일본의 도카이도 신칸센은 약 6년에 걸쳐 500km 구간을 완공했고, 중국의 북경-상하이 고속철도도 7년 이상 소요됐다. 독일 역시 400km 구간을 완공하는 데 1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이와 비교해 빈스피드가 제시한 5년은 국제 기준을 넘어선 초고속 타임라인이다.
이번 제안은 1992년, 고(故) 보반끼엣(Vo Van Kiet) 전 베트남 총리가 밀어붙였던 500킬로와트(kV) 남ㄴ북 송전망 건설 사업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에도 “불가능하다”는 회의론이 팽배했지만, 2년 만에 성공적으로 완공돼 베트남 남부 산업발전의 기폭제가 됐다.
빈스피드 제안은 단순한 인프라 개발을 넘어, '국가 시스템 전환'을 겨냥한 민간의 도전장으로 해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고속철 제안이 제2의 '500킬로와트' 사례가 될 수 있다면, 베트남의 경제·사회적 체질 개선에 결정적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프로젝트 실현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현재까지 빈스피드는 자금 조달 방식, 기술 공급국, 해외 파트너, 운영 방식 등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상징적 제안이자 분위기 띄우기용 선언”이라는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정부 관계자는 “단순 제안만으로는 실행으로 전환될 수 없다”며 “환경영향 평가, 재정건전성 분석, 사회적 수용성, 법률·행정 요건 충족 등 다면적인 검토 절차와 광범위한 공공-민간 협력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베트남 정부는 철도 현대화 전략의 일환으로 진행 중인 남북 고속철 프로젝트과 관련해 다수의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다만 최근 수년간 예산 분담, 외국 차관 조달, 운영권 분쟁 등으로 인해 계획 자체가 수차례 수정 및 지연된 바 있다.
이번 빈스피드의 제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결단과 민간 자본의 역할 외에도, 세계은행(WB), 아시아개발은행(ADB), 일본국제협력기구(JICA) 등 국제 금융기관과의 다자 협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동시에 국내 사회의 여론 형성, 토지 수용 문제, 생태환경 보존 논의 등 복합적 과제가 산적해 있다.
빈스피드의 파격 제안은 한편으로 민간 주도 인프라 개발에 대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 주도 방식이 다소 정체된 가운데, 민간-공공이 협력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이 베트남에서도 본격적으로 도입될 수 있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93조원, 5년 완공”이라는 메시지는 현실성 여부를 떠나, 베트남 사회에 인프라 패러다임 전환의 논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불씨를 실현 가능한 동력으로 전환할 국가적 리더십과 전략적 연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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