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해결되지 않은 5·18] "계엄군 냄새, 지금도 생생"…아이를 잃은 엄마의 외침

5·18 민주화운동 성폭력 피해자는 국가 폭력의 희생자다. 피해자들이 하나같이 당시에 투입된 ‘계엄군’과 ‘경찰’을 가해자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해자 명예회복을 돕기 위해 5·18 당시 광주에 투입된 모든 군경을 대상으로 한 철저한 조사가 필요한 이유다. <편집자주>

 
"계엄군에게서 나던 술·땀·입 냄새 때문에 지금도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항시 토를 합니다"


- 최경숙(2024년 9월 30일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 발언 중 일부) 
  
최경숙 씨(왼쪽에서 3번째)가 지난해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해 45년 전 계엄군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사진=정현환 기자]
최경숙 씨(왼쪽에서 3번째)가 지난해 9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5·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해 계엄군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사진=정현환 기자]
 
계엄군이 임산부를 '집단 성폭행'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계엄군이 민간인 여성을 집단으로 성폭행했다는 증언이 45년 만에 확보됐다. 군이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명백한 성범죄로 앞으로 추가 진상조사가 필요성이 제기된다.

20일 아주경제가 분석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 개별 보고서와 5·18민주화운동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에 따르면, 계엄군이 최경숙 씨(72세)를 집단으로 성폭행한 정황이 자세히 실려 있다. 

최 씨는 5·18 민주화운동 기간(1980년 5월 18일~27일)이었던 당시에 27세였다. 5월 19~20일 20시경 2명의 계엄군으로부터 성폭행당했다. 5월 19일은 11공수특전여단이 광주에 증파된 날이다.

그때 최 씨는 네 살배기 자녀를 둔 엄마이자 임산 3개월 차 임산부였다. 택시 운행을 마치고 집으로 오던 길에 전남여고 후문 담벼락 부근에서 총을 찬 얼룩무늬 군복의 계엄군 5∼6명이 피해자의 차량을 멈추게 했다. 

계엄군들은 최 씨에게 “죽기 싫으면 가만히 있어”, “자동차에 불을 지르겠다”고 하며 차량 열쇠를 빼앗았다. 이어 자동차를 확보한 계엄군은 곧바로 최 씨 얼굴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다.

계엄군은 차량 뒷좌석으로 최 씨를 밀어 넣고 2명이 교대로 성폭행했다. 최 씨는 45년 전 그날의 충격으로 "자신을 성폭행한 계엄군의 술, 땀, 입냄새를 아직도 기억한다"고 진술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경숙 씨는 택시운전사였다 사진 독자 제공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최경숙 씨는 택시운전사였다. [사진= 5·18민주화운동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사건 보고서]
계엄군의 성폭행으로 유산…"그 아이가 태어났더라면"
이러한 사실은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민간인 여성을 조직적으로 성폭행했음을 의미한다. 또 군인이 민간인을 보호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장 약하고 보호해야 할 대상에게 성범죄를 저질렀음을 보여준다. 나아가 우발적인 단순 성폭력이 아니라, 군이 집단으로 민간인에게 국가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씨는 “군인들 옷은 얼룩무늬였어요. 그냥 군인이 아니었어요. 얼룩무늬 군인이에요. 그래서 제가 그 뒤로도 예비군 옷만 보면 울렁거려요. 당시 나보다 어리게 보였어요. 저도 그때 27살이었는데, 그 군인들은 더 어리게 보였어요. 계급이고 표식이고 다른 거는 제대로 보지 못한 것 같아요”라고 그날을 떠올렸다. 

계엄군의 구타와 폭언, 성폭력의 피해는 컸다. 당시 임신 3개월째였던 최 씨는 성폭행당한 후 자궁 밑에 물혹이 생겼다. 다음날부터 성기 통증과 하혈, 복통이 생겼다. 최 씨는 당시 광주 시내가 마비돼 병원에 갈 수 없어 조사원으로 향했다. 거기서 유산을 권유받았고 임신중절 수술을 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폭행하며 끌고가고 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5·18 민주화운동 당시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계엄군이 광주시민을 폭행하며 끌고가고 있다. [사진=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45년간 성폭행 후유증에 시달려…"매년 5월이 되면 그때 일 떠올라"
최 씨는 45년이 지났지만, 자신이 성폭행당한 사건의 후유증으로 당시 가해자 군인들의 비슷한 옷매무새 사람을 보면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다. 계엄군의 범행이 일어난 장소가 택시라 결국 택시업도 얼마 못가 그만두게 됐다.

문제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성폭력 당할 때 맡았던 계엄군과 비슷한 냄새를 맡게 되면 민감해지는 이상 증상을 겪고 있다. 최 씨는 지난 2018년 광주 트라우마센터에서 약 3년간 상담받아 자신이 ‘성폭행 후유증’을 겪고 있는 걸 알게 됐다. 38년만의 일이었다.

최 씨는 “이제라도 용기를 내서 억울함을 풀고 싶다”며 “45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성폭행당한 일을 잊어버리고 내려놓으려고 해도 잘 안됐다”고 밝혔다.

아울러 “자식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5·18 얘기를 들으면 심적으로 괴롭다"며 "매년 5월이 가까워지면 그때마다 과거 일이 벌컥벌컥 떠오른다. 그 아이를 낳아서 혹시 딸이었으면, 내가 살면서 툭 털어놓고 얘기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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