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서 칼럼] 미중 무역전쟁 속 한국의 생존전략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무역은 평화를 만들기도, 전쟁을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프랑스 경제학자 프레데릭 바스티아는 “상품이 국경을 넘지 못하면,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고 말했다. 이 말은 단지 수사학이 아닌, 오늘날 국제질서의 실상을 예언한 통찰이다.
2018년부터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2025년 들어 단순한 관세 갈등을 넘어 기술·안보·외교를 포괄하는 총체적 충돌로 비화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중국산 제품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세계 공급망을 흔들었고, 이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과 분열을 가속시켰다. 한국처럼 수출 중심 경제 구조를 가진 나라는 이 혼돈의 시대에 방향을 잃지 않고 대응 전략을 제대로 세워야 할 시점이다.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세계 공급망의 붕괴를 촉진하고 있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산 제품 3600억 달러어치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며 무역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명분은 중국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무역 불균형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국 내 중간재 및 소비재 가격의 상승과 제조업체의 혼란만 초래했다.
애플, 테슬라, GM 등 미국 기업들은 생산 비용 증가로 인한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반도체부터 완성차까지 글로벌 공급망이 요동쳤다. 한국의 삼성전자, 현대차 역시 중국 내 생산기지 재조정과 수출 경로 변경에 직면해야 했다. 단기적으로는 중국에서 동남아로의 생산 이전이 가속됐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공급망의 복잡성과 불안정성이 확대됐다.
냉전 말기 미국과 중국의 수교 및 교역 확대는 안보 긴장을 완화하는 주요 수단이었다. 그러나 현재의 무역전쟁은 반대로 군사적 충돌의 전조가 되고 있다. 대만해협을 둘러싼 군사 긴장, 홍해에서 무장세력의 선박 공격, 이란과 이스라엘 간 충돌은 모두 자원, 항로, 반도체 등 지경학적 요소와 깊게 얽혀 있다. 특히 첨단AI 반도체의 90% 이상을 생산하는 대만에 대한 미·중의 전략적 경쟁은 단순한 경제 이슈가 아니라 전쟁 가능성마저 동반하는 핵심 충돌 지점이다. 지금 무역이 외교의 수단에서 ‘무기화’되면서, 세계는 점차 리스크가 커져 가고 있다.

중국의 부상, 미국의 헛발질이 만든 결과
중국 경제의 부상은 단순한 내부 역량의 결과만은 아니다. 2001년 WTO 가입을 주선한 미국의 '포용정책'이 오히려 중국의 제조업 성장과 기술력 축적을 도운 측면이 크다. 특히 애플, 인텔, 퀄컴 등 미국 기업들이 중국 내 생산을 확대하며 수십년간 기술을 이전했고, 이는 '중국제조 2025'의 기반이 되었다. 미국의 무역전쟁은 이런 구조적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즉흥적 대응에 그쳤고, 결과적으로 중국의 기술자립 의지를 더욱 강화시켰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의 견제가 중국을 ‘전략적 자립’으로 몰아넣은 셈이다.
부동산회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국가를 운영하는 듯한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정책은 국가 전략이 아닌 국익과 사익이 혼재하는 심각한 윤리적 문제가 있다. 트럼프의 사위 쿠슈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빈 살만 왕세자와의 친분을 바탕으로 중동 부동산 프로젝트와 20억 달러 규모의 투자펀드를 유치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카타르에서 4억 달러짜리 초호화 비즈니스 제트기 등을 제공받은 바 있다. 그 외에도 트럼프 일가는 가상화폐 발행, NFT 플랫폼 구축 등 사적 이익 사업이 외교정책과 결합되며 국가정책의 정당성과 투명성이 의심받고 있다. 그래서 트럼프 시대에는 미국의 무역전쟁마저도 ‘트럼프 대통령 가족 사업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금 미·중의 갈등은 단순한 무역 전쟁을 넘어 기술패권 경쟁으로 확장되었다. 2022년 미국은 반도체 기술 수출을 전면 제한하며 중국의 첨단 반도체 자립을 저지하려 했고, 이에 대응해 중국은 미국 기업에 대한 규제 강화와 희토류 수출 통제를 무기화 했다. 현재는 AI, 클라우드, 6G, 우주인터넷 등 전략기술 전 영역에서 미·중의 충돌이 본격화되고 있다.
미국은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 스타링크, 뉴럴링크 등을 통해 민간기술이 안보정책과 연계된 ‘테크폴라리즘(Tech-Polarism)’ 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샤오미, 화웨이, 텐센트와 같은 민간 기술기업을 통해 디지털 전체주의 체제를 강화하고 있다. AI는 미국에서 ‘혁신과 효율’의 도구로, 중국에선 ‘감시와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래서 지금 디지털기술은 민주주의를 강화하기도 하고, 통제를 정교화하기도 한다.

무역강국 한국의 전략 – 기술, 외교, 가치의 3축
글로벌 공급망은 더 이상 효율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안전성과 신뢰, 가치 공유가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한국은 반도체와 이차전지, 친환경소재 등에서 글로벌 기술경쟁력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미국·일본·EU 등과의 전략적 공급망 동맹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한·미 반도체 파트너십, 한·일 배터리 소재 협력, 인도-베트남과의 신흥시장 연계는 한국의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 또한 반도체 클러스터, K-배터리 얼라이언스, AI반도체 R&D 투자 확대 등 국가 차원의 기술축적 전략이 절실하다
미·중의 기술 갈등의 본질은 디지털 양극화다. 미국은 기술과 데이터 권력을 중심으로 ‘자유진영 중심의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하려는 반면, 중국은 '디지털 일대일로'를 통해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남미에 감시기술과 디지털 플랫폼을 수출하고 있다. 이로 인해 ‘디지털 권위주의’와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두 질서가 충돌하고 있다. 이는 단지 기술 전쟁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규범 경쟁이기도 하다. 한국은 이 두 진영 사이에서 윤리적 기준과 기술 선진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한국은 GDP 대비 무역비중이 70%에 달하는 세계 주요국 중 무역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다. 관세전쟁은 디지털 양극화 시대의 전조이고 무역에서 기술전쟁으로, 디지털 냉전의 도래다. 한국은 공급망 혼란, 기술 블록화, 지경학적 리스크가 가중되는 가운데, 새로운 생존 전략이 절실하다. 그래서 6월 출범하는 신정부는 다음의 세가지 전략을 우선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전략기술 집중 투자다. 반도체, AI, 배터리, 우주항공, 양자기술 등 5대 미래기술에 대해 국가 차원의 R&D 자금을 집중 배분해야 한다.
둘째 미국의 관세전쟁이 유발한 세계 공급망 교란은 기술혁신과 동맹국 협력으로 극복할 수밖에 없다. 공급망 다변화 및 기술동맹 강화가 필요하다.  미·일·EU와의 첨단기술 동맹 강화, 인도·아세안과의 ‘우회 생산 네트워크’ 구축을 통한 공급망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셋째 지경학적 위기 대응체계 확립이다. 이젠 지경학적 위기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다. 트럼프 시대 외교는 이제 통상과 경제와 분리할 수 없다. 경제·안보·기술 통합 대응을 위한 컨트롤 타워인 국가 지경학전략본부 설립도 필요해 보인다.




전병서 필자 주요 이력

▷칭화대 석사·푸단대 박사 ▷대우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반도체IT 애널리스트 ▷경희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중국경제금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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