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다음 달 1일부터 유럽연합(EU)을 대상으로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면서 미·EU 간 무역갈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미국이 지난달 상호관세를 유예하고, 이달 중국과 일시적 관세전쟁 휴전에 합의하며 잠잠해지는 듯했던 글로벌 관세 리스크가 재차 불거지고 있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EU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지난 24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엑스(옛 트위터)에 "EU·미국 무역은 독보적이며, 위협이 아닌 상호 존중을 토대로 이뤄져야 한다"며 "우리의 이익을 방어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또한 요한 바데풀 독일 외무장관은 EU의 "유럽 방어"를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고, 로랑 생 마르탱 프랑스 대외무역장관 역시 소셜미디어 엑스에 "우리는 '긴장 완화'라는 같은 노선을 유지하고 있지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EU와의 협상이 지지부진하다는 불만을 드러내며 내달 1일부터 EU에 5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경고한 것에 대한 반응으로,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EU 역시 대응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에 미국·EU 간 관세전쟁 우려가 제기되면서 지난 23일 미국, 유럽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글로벌 시장에는 또다시 관세 리스크가 떠오르고 있다.
미국과 EU는 상호 최대 교역 파트너로, EU 집행위에 따르면 양측의 상품·서비스 교역 규모가 2023년 기준 1조5000억 유로로 전 세계의 약 30%, 글로벌 국내총생산(GDP)의 43%를 차지한다. 따라서 미국과 EU간 관세 전쟁이 발발하면 양측, 나아가 세계 경제 전반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 시장조사업체 캐피털 이코노믹스는 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미국과 교역 비중이 큰 아일랜드의 GDP가 5% 줄어들고, 독일은 1.5%, 이탈리아 1.2%, 프랑스는 0.75%가 각각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줄리안 힌츠 킬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1.5%포인트 감소할 것으로 분석했다.
유럽 자산운용사 노르디아자산운용의 채권 및 주식 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인 카스퍼 엘름그린은 "이번 사태는 무역 관련 불확실성이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시켜준다"며 "합의 없이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입을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9일부터 7월 8일까지 90일간 상호관세를 유예한 가운데 주요국들과 협상을 통해 관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하지만 상호관세 유예 기간의 절반이 지나가도록 합의를 맺은 곳은 영국 1곳뿐인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는 각국이 협상에 속도를 내도록 압력을 가하고 있다. 특히 최근 무디스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 및 감세안 추진 등으로 미국 정부의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 협상 타결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진 상황이다.
이에 EU는 그동안 대미 보복관세를 준비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은 협상을 통한 해결책 모색에 집중한다는 방침이다. 셰프초비치 집행위원은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전화 통화를 갖고 "EU는 전적으로 협상에 임하고 있으며, 양측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합의를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여전히 선의로 협상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EU는 전략적 분야에서의 협력 확대 방안을 담은 입장문을 미국 측에 전달하고 에너지, 5G·6G 통신, 반도체, 철강 등 분야에서 협력을 제안했다. 또한 자동차를 비롯한 모든 공산품에 대한 상호 무관세와 민감도가 낮은 농산물 품목에 한해 미국산 수입 확대도 수용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미·영 간 합의처럼 기본 관세를 10%로 유지하는 방식은 수용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양측은 전화 통화에서도 이견을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당분간 불확실성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전 책사'로 잘 알려진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EU 관세 위협의 부분적 이유로 지난주 열린 주요 7개국(G7) 재무장관 회의에서 무역 관련 이슈의 논의가 부진했다는 것이 있다며, 현재 미국과 협상이 더딘 국가들 역시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에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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