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다 가블러와 젓가락

  • 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리뷰

헤다 가블러 사진국립극단
헤다 가블러 [사진=국립극단]

“대단한 분이 테스만과 결혼을 하셨네요.”
 
국립극단의 연극 <헤다 가블러>는 대단했던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결혼 전 모든 이의 선망의 대상이었던 헤다 가블러는 '팔크 장관 저택'을 신혼집으로 장만해 주겠다는 남자, 예르겐 테스만과 충동적으로 결혼한다. 헤다 가블러의 이름은 그렇게 헤다 테스만이 된다. 

이름을 집과 교환한 대가는 쓰디쓰다. 신혼여행을 일종의 연구 여행으로 생각하는, 대화가 하나도 안 통하는 남자와 살아야 한다. 그 대단했던 헤다가 결혼 이후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죽도록 지겨워하는 것뿐이다. 아니면 아이를 낳든가. 

축 늘어진 꽃 냄새만 남은, 철벽으로 둘러싸인 듯한 집에서의 생활은 권태롭기만 하다. 대가가 큰 만큼 헤다는 자신의 이름과 맞바꾼 저택에 그 어떤 침입자도 용납하지 않는다. 낡아빠진 모자 등 하찮은 존재마저도.
 
어느 날 “난 집 같은 거 없다. 그런 걸 가져 본 적도 없다”는 여자, 엘브스테가 등장하면서 진공상태 같던 헤다의 집은 오염되기 시작한다. 헤다는 깔봤던 엘브스테가 자신의 전 연인인 뢰브보르그의 삶에 ‘영향력’을 미치는 대단한 인물이 된 모습을 보자 심사가 뒤틀린다. 갑자기 “타인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을 갖고 싶다”며, 뢰브보르그를 ‘머리에 포도 넝쿨을 두른’ 예전의 알코올 중독의 모습으로 되돌리려 한다.
 
 <헤다 가블러>는 집과 이름에 대한 이야기다. 집을 얻은 여자 헤다는 자신의 이름과 자유를 잃는다. 헤다를 제외한 등장인물들은 헤다의 집과 밖을 오가지만, 헤다는 타인의 입을 통해서나 바깥소식을 들을 수 있다. 그렇기에 “한 번쯤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힘을 갖고 싶다”는 헤다의 주문은 공염불이다. 인간의 운명을 흔들기 보다는, 저택을 지키기 위해서 우아함으로 포장한 처절한 몸부림을 치는 것 같다. 이 몸부림은 쾌락의 거세로 이어지지만, 이 역시 타인이 전해준 소식이다. 몸이 집에 메여있는 헤다는 바깥소식의 사실 여부를 파악할 수조차 없다.
 
그렇다고 집에서 나온 여자가 온전하게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것도 아니다. 집을 뛰쳐나온 여자 엘브스테는 극 말미에 자신의 이름 ‘뤼싱’으로 불리지만, 남자들의 책에 영감을 줄 뿐 책의 공동 저자로 이름을 올리지도 못한다.
 
이름을 잃었든, 얻었든, 또 되찾았든 헤다와 엘브스테, 두 여자를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남자에게 책 쓸 영감을 주느니 내 이름을 건 책을 써보겠고, 자신에게 총구를 겨누기 전에 집 벽에라도 한 방 쏴보겠다.  
 
그럼에도 <헤다 가블러>를 봐야 할 이유는 넘친다. 나라의 유일한 수탉을 꿈꾸며 나온 남자들의 대선 토론에서 남은 것은 ‘젓가락’ 뿐. 상대를 공격하는 데 혈안이 돼, 여성의 몸을 물건으로 취급하고 조롱하는 말이 공중파까지 타는 존중도 배려도 없는 갈라치기 정치. <헤다 가블러>를 통해 여성, 인간, 정체성, 주체성 등 수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진 두 여자, 배우 이혜영과 연출 박정희는 '여성의 몸'과 '젓가락'이 병치될 수 없다고 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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