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조5000억원 규모의 국가 인공지능(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시작부터 좌초위기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사업자 공모에 나섰지만 호응한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주요 ICT 기업들은 “일은 기업이, 공은 정부가 가져가는 구조”라며 등을 돌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조건 변경 없이 재공고에 나섰지만, 업계 참여 가능성은 여전히 불투한 상황이다.
1일 ICT 업계에 따르면 민관 합작 투자 방식으로 추진된 대형 국가사업 ‘AI 컴퓨팅센터’ 구축 사업이 지난 30일 무응찰로 유찰됐다. 사업 참여가 유력시되던 삼성SDS·네이버·앨리스그룹 컨소시엄은 물론, SK텔레콤·KT·LG CNS·마이크로소프트·아마존웹서비스(AWS) 등도 참여하지 않았다.
국가AI컴퓨팅센터는 AI 인프라 확보를 위해 정부가 올해 역점을 두고 추진하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민관이 함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해 대규모 AI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전체 사업 규모는 약 2조5000억원에 이르며, 올해만 추가경정예산으로 1조4600억원이 편성됐다.
지난 1월 공고 이후 2월 말까지 약 100곳의 기업과 지방자치단체가 사업 참여 의향서를 제출했던 것과는 상반된 분위기다. ICT 업계는 "민간 기업이 부담할 것은 많은데 실익은 아예 없다"고 말한다. 사업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만만찮은 출자금, 회사 경영권은 정부에 넘겨야 해 참여 자체가 손해라는 인식이 크다.

이번 사업은 2030년까지 공공과 민간이 각각 2000억원을 출자해 총 4000억원 규모의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 AI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운영하는 방식으로 구성됐다. 기획재정부, 과기정통부, 산업·기업은행 등 공공기관이 참여하며, 민간은 데이터센터·클라우드·통신·건설 기업 및 지자체 등이 대상이다.
SPC는 공공이 지분 51%를 보유하며, 국산 AI 반도체 비중 50% 확대, 대학·연구소·스타트업 대상 저가 서비스 제공 등을 수행해야 한다. SPC 해산 시에는 민간이 정부 지분을 이자까지 얹어 사야 하는 ‘매수청구권(바이백)’ 조항이 적용돼, 민간 기업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지분이 과반이라는 점이 가장 큰 부담이었다”며 “결국 일은 기업이 하고, 수익은 정부가 챙기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지분을 들고 있는 한 개입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실패 시 기업이 배임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점도 기업들의 고민을 키웠다. 업계 관계자는 “입찰자는 2040년까지의 사업 계획을 제출해야 하는데, 정부는 수요를 얼마나 보장해줄 수 있는지 구체적인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정부가 AI 반도체 중 얼마를 지원하는지 등 사업성을 검토할 수 있는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직 상용화되지 않은 국산 신경망처리장치(NPU)를 의무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도 기업들의 발을 묶었다. 국산 NPU의 시장성이 검증되지 않은 현재 2030년까지 50% 비중 확정은 위험하다는 의견이다. 정권 교체 여부도 부담이다. 업계 일각에선 “차기 정부의 AI 정책 방향을 확인한 뒤 참여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관망 기조가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정부 지분 51%는 정책금융기관의 출자 구조에 따른 것”이라며 “정부가 일정 지분을 확보해야 국가 사업을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분 조정은 향후 민간 기업과의 협의를 통해 조정 가능하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공모 조건 변경 없이 오는 6월 2일부터 10일 이상 2차 공모를 진행한다. 기존 공고를 취소하고 조건을 바꾸려면 관계 부처 협의 등으로 최소 40일 이상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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