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병종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교수]
대한민국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났다. 필자가 이 컬럼을 쓰는 시점에 아직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즉 새 대통령에게 있어 가장 험난한 과제는 격랑의 국제 정세 속에서 향 후 5년간 한국의 대외 정책을 어떻게 펼쳐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으로 촉발된 무역 전쟁,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국지전 등 수많은 지정학적, 지경학적 난제 앞에서 한국의 새 대통령은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나 안타깝게 선두권에 있는 두 후보 모두 대외 정책 및 외교 분야에 있어서는 매우 취약해 보인다. 이 분야에 있어 특별한 경험도 없고 남다른 비전도 갖고 있지 않다. 이재명, 김문수 후보 모두 좁은 국내적 시각에 사로잡혀 있어 한국이 필요로 하는 대외 지향적 거시 안목이 결여되어 있다. 갑자기 치루게 된 선거라 준비 기간이 짧았던 탓도 있겠지만 눈에 띄는 외교 정책 공약도 찾아 보기 어렵다. 갈수록 혼란스럽고 혼탁해지는 국제 정세에 비춰 볼 때 걱정이 앞선다.
한국의 새 대통령이 한반도라는 좁은 테두리가 아니라 전 세계를 무대로 외교 정책을 펴야 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간 한국의 외교는 북한과 북핵, 그리고 한반도의 평화 관리에 가장 큰 역점을 두어왔다. 물론 이는 계속적으로 중요한 과제이지만 문제는 한반도 문제가 더 이상 한반도에 국한되어 있지 않고 동북아는 물론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정세와 맞물리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북한과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밀착시키고 대만 문제로 인해 주한미군의 역할이 변한다는 점이 이를 잘 반영한다.
이와 관련 지난 주 제주포럼에서 있었던 전직 외교장관들의 대담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여기에 참석한 송민순, 김성환, 윤병세 세 명의 전 외교장관들은 모두 입을 모아 한반도 시각을 벗어난 큰 틀에서의 외교 정책을 주문했다. 윤 장관은 신정부가 동시 다발적인 위기를 맞아 대미 외교를 넘어 “복합 외교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장관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한국은 국제적 이슈들에 대해 “큰 틀의 이니셔티브”를 추진할 것을 주문했다. 송 장관은 세력권 정치(sphere of influence)를 추구하는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이 국제 문제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세 명의 전직 외교 장관을 포함해 많은 전문가들이 한반도를 넘는 세계적 시각의 외교 정책을 주문하는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당분간은 한반도 정세에 큰 변화가 감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귀환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1기 때와 같은 북미 정상 회담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 가자 등에서 분쟁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트럼프가 한반도에 대해 갖는 관심은 현저하게 줄었다. 그보다는 중국을 상대로 한 관세 무역 및 기술 패권 대결이 더욱 큰 현안이다. 북한으로서도 우크라이나 전쟁을 통해 강화된 북중러 삼각 협력 관계 속에서 굳이 큰 상황 변화는 원치 않는다. 이 협력 관계를 통해 자신의 안보 관리를 하는 것이 트럼프 1기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대선에서 두 명의 선두권 후보들은 외교 정책, 특히 대북 정책에 있어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과거처럼 진보당 후보가 북한과의 협력을 약속하고 보수당 후보가 북한에 대한 압박을 시사하는 경향도 없었다. 양 후보 모두 강력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안보를 관리하고 북한의 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원론적 수준의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특이할 만한 점은 여론조사에서 앞서고 있는 이재명 후보 캠프에 많은 전직 외교관들이 포진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과거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던 외교관들도 많이 포함된다.
이럴 경우 한국 정부의 선택은 난감해 질 것이고 이는 2003년 처럼 한국 사회의 분열로 이어지게 된다. 역내 갈등이나 전쟁 상황 시 미국은 직접 파병이 아니더라도 한미일 공조 체제를 이유로 한국의 보다 적극적인 참여를 요구할 것이다. 특히 이번 선거로 한국에 진보 정권이 들어설 경우에 중국과의 관계를 더욱 고려한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 질 수 있다. 이 밖에도 여러 국제 문제에 있어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 어려운 선택을 강요하게 될 것이다. 미중간 양자 택일을 해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러한 상황 변화는 물론 트럼프 행정부 출범으로 더욱 확연해졌다. 그러나 향 후 트럼프 대통령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 이후 미국의 정권이 바뀐다면 자국 이익 위주의 외교 정책이 어느 정도 약화될 수는 있겠으나 근본적인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 사회에서 타협과 협력보다는 현실주의에 바탕을 둔 첨예한 대결과 반목의 구도가 이어질 것이다. 김성환 장관의 표현대로 “우아한 위선”이 “정직한 야만”으로 바뀌는 상황이다. 이런 현실에 한국의 선택지는 갈수록 좁아지겠지만 이에 대처할 국제적 안목과 식견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별로 없다는 점은 걱정거리가 아닐 수 없다.
필자 주요 이력
▷연세대 언론정보학 박사 ▷AP통신 특파원 ▷뉴스위크 한국지국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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