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수입산 자동차에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지 두 달이 지나면서 일본 자동차 업계가 가격 인상 여부를 두고 치열한 눈치싸움에 돌입했다. 관세 부과 직후 ‘사재기 수요’에 힘입어 판매가 일시적으로 증가했지만, 이후 일부 업체들을 중심으로 판매 급감이라는 부작용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자동차업계는 오는 7월부터 본격적인 관세 부담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하는 가운데 전반적인 가격 인상 압박이 확산하는 분위기다.
지난 5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요타의 5월 미국 판매량은 전년 동기 대비 11% 증가한 24만176대를 기록했다. 혼다도 같은 기간 7% 늘어난 13만5432대를 판매했다. 이는 관세 인상 전에 차량을 구매하려는 미국 소비자들의 ‘사재기 수요’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이후 시장에서는 관세 부작용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일례로 지난 4월 일본의 자동차 수출 물량은 증가했지만, 수출액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일본 재무성의 4월 무역통계(속보치)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일본의 미국향 자동차 수출 단가는 약 407만엔(약 3900만원)으로 전년 동월 대비 약 15% 하락했다. 이에 일본의 4월 완성차 수출 물량은 12만5817대로 전년 동월 대비 11.8% 증가했지만, 수출액은 4.8% 감소한 5130억엔(약 4조8230억원)에 그쳤다. 자동차 수출액이 줄어든 것은 4개월 만에 처음으로, 수출 단가가 감소하면서 수출액도 감소한 영향이다.
닛세이기초연구소의 사이토 타로 경제조사부장은 “(일본) 국내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수출 감소를 완화하기 위해 관세 인상분을 흡수하고 가격을 인하한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마쓰다는 지난 4월 미국 판매량이 3만7660대로 2004년 이후 4월 기준 최고 실적을 냈지만, 한 달 뒤인 5월 판매량은 전월비 19% 급감한 2만8937대를 기록했다. 모로 마사히로 마쓰다 사장은 “사재기 수요는 가라앉았고, 언젠가는 구매를 자제하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지금까지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관세 적용 이전에 확보한 재고 차량을 중심으로 버텨왔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관세가 반영된 물량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4일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를 50%로 상향 조정하면서, 제조원가 부담도 한층 가중될 전망이다. 요미우리는 여름 이후에는 제조사 간 가격 인상을 둘러싼 신경전이 본격화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일부 업체는 이미 가격 조정에 들어갔다. 미국 포드는 멕시코산 3개 차종의 가격을 최대 2000달러(약 272만원) 인상했고, 현대차도 이르면 6월 중 미국 시장에서 차량 가격 일괄 인상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완성차 업체 가운데서는 미국 판매 의존도가 높은 스바루가 선제적으로 가격을 올렸다. 스바루 미국법인은 지난달 판매 차량 가격을 최대 2055달러 인상한다고 밝혔다. 미쓰비시도 약 3개월분 재고 소진 이후 아웃랜더 등 주요 모델의 현지 판매가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다만 다른 업체들은 여전히 관망 자세를 보이고 있다. 한 일본 완성차 업계 관계자는 요미우리에 “가격을 섣불리 올렸다간 판매가 줄어든다”며 “경쟁사들의 대응을 본 뒤 판단할 것”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조사업체 S&P 글로벌 모빌리티의 마사토시 니시모토 한·일 경차량 연구 분석 담당 부국장은 “일본 업체들은 미·일 협상의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라며 “7월이 가격 인상 움직임의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