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 21대 군주 개로왕의 손자인 삼근왕(23대, 477~479)의 것으로 추정되는 무덤이 발견됐다. 삼근왕은 개로왕의 직계 후손 가운데 유일한 10대 왕으로 15세에 사망했다.
국가유산청 국립문화유산연구원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의 2호분 주인이 삼근왕으로 추정할 수 있다고 17일 밝혔다.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은 백제가 공주에 도읍한 475년부터 538년까지 재위한 웅진기 왕들의 묘역이 모여있는 곳이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2023년 9월부터 이곳을 재조사했다.

이번 재조사를 통해 2호분의 주인이 삼근왕으로 추정할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발견됐다. 우선 화려한 금귀걸이와 함께 어금니 2점이 출토됐는데, 법의학 분석결과 이 어금니들은 10대 중후반의 것으로 밝혀졌다. 2호분의 조성 시기인 웅진기 초기 왕인 개로왕(21대)의 직계 후손 중 유일한 10대였던 삼근왕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이와 함께, 1~4호분에 묻힌 인물들은 개로왕의 직계인 문주왕(22대)과 삼근왕을 비롯해 혈연관계에 있는 왕족들로 추정된다.

아울러 2호분에서는 화려한 유물들이 대거 출토되는 등 웅진 초기에도 백제의 대내외 정치 체계가 굳건히 유지됐음을 보여주는 증거들이 나왔다. 2호분에서 출토된 청색의 유리옥이 달린 정교한 금 귀걸이의 경우, 백제 초창기인 한성기의 귀걸이와 웅진 후반기(무령왕릉)의 왕비 귀걸이의 중간 형태로 보인다. 2호분에 묻힌 왕은 웅진 초기에 재위한 사실과 함께 당시에도 백제 왕실은 이미 높은 수준의 금세공 기술을 유지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금 귀걸이와 함께 발견된 반지는 은에 줄무늬를 새기고 금을 도금했다. 재질은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의 반지는 경주 황남대총 북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서 웅진 초기 백제와 신라의 긴밀한 관계를 미루어 알 수 있다. 또한, 철에 은을 씌워 장식한 칼 손잡이의 오각형 고리 장식은 앞서 나주와 논산에서도 발견된 바 있어 당시 백제가 지방 수장층에게 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대외 교역망도 잘 유지되고 있었다. 여러 종류의 유리 옥 1000여 점이 수습되었는데, 이 중 황색과 녹색 구슬에 사용된 납 성분은 무령왕릉과 동일하게 산지가 태국으로 분석됐다. 당시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광범위한 교역망이 운영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그동안 정치적으로 혼란기로만 인식되었던 웅진기 전반부터도 백제는 이미 내부 정치 체계와 대외 교역망을 잘 유지하며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이를 발판으로, 웅진 후반기에 속한 무령왕은 ‘다시 강국이 되었음(更爲强國)’을 선언할 수 있었고, 성왕은 사비로 도읍을 옮겨 한층 성숙한 문화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편,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6월 17일 오전,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웅진(공주) 도읍기의 왕릉인 '공주 무령왕릉과 왕릉원 1~4호분'(사적) 조사 성과를 언론에 공개하고, 18일과 19일 오전 11시에는 발굴현장에서 일반 국민들에게 직접 공개설명회를 진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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