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전엔 팬데믹만 끝나면, 환율 좀 내리면, 선거만 끝나면 나아질 거라 생각했는데...이젠 기대를 버린지 오래예요"
지난 17일 서울 종각역 인근 한 한식주점의 사장인 A씨는 한산한 가게 내부를 둘러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저녁 장사가 한창인 시간이었음에도 '젊음의 거리'는 이름과 달리 활기가 없었다. 점포마다 간판 불이 밝게 켜져 있었지만 발길이 닿는 곳마다 빈 자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외부에서 얼핏 보기에 손님이 앉아있는 듯한 식당도 막상 들어가면 창가 쪽 몇 테이블만 차있을 뿐, 안쪽은 썰렁한 분위기였다. 거리 곳곳에선 식당들의 고군분투가 느껴졌다. '점심 식사 가능 전 메뉴 2000원 할인'이라고 적은 현수막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듯한 'Alipay OK' 안내판까지 손님을 끌어들이기 위한 시도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직장인들의 발걸음은 식당 대신 지하철과 버스정류장으로 곧장 향했다.
장기화된 내수 침체 속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뚜렷한 회복세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폐업을 고민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식주점을 운영한다는 B씨 "장사한 지 5년 됐는데 요즘이 제일 어렵다"며 "갚아야 할 돈이 많아 문을 닫는 건 엄두도 못 냈는데, 빚이 줄기는 커녕 더 느는 걸 보면 그만둘 때가 된 건가 싶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종각 지하쇼핑센터의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주력 업종인 의류·잡화·뷰티 매장들이 소비심리 위축의 직격탄을 맞은 탓이다. 매장 안 점주들은 굳은 표정으로 카운터에 앉아 바깥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누군가 매장 앞에 잠시 머물기만 해도 잽싸게 일어나 말을 걸었지만, 호객은 좀처럼 구매로 이어지지 않았다.
여성의류 매장을 운영 중인 C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퇴근길에 들러서 블라우스 하나, 바지 하나씩 사가는 손님들이 많았다"며 "지금은 세일이라고 써붙여도 둘러만 보고 가는 분들이 대부분"이라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현장의 무거운 공기는 수치로도 확인된다. 국세청의 국세통계포털 '100대 생활업종'에 따르면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이 다수 분포된 외식 관련 11개 업종(간이주점·기타외국인음식점·기타음식점·분식·일식·제과·중식·커피·패스트푸드·한식·호프) 사업자 수는 지난 4월 기준 75만9916명으로 1년 전보다 9326명 줄었다. 1년 새 하루 평균 25개의 식당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이같은 추세라면 이달 말 발표될 2024년 귀속연도 국세청 폐업자 수 통계에서 전국 폐업자 수가 100만명을 넘어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로 전국 폐업자 수는 2020년 89만4604명을 기록한 뒤 2021년과 2022년 2년 연속 소폭 줄었지만, 2023년 98만5868명으로 최근 5년 사이 최고치를 찍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물가 급등으로 소비자들이 부가적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그 여파가 자영업자들의 어려움으로 이어지고 있다"면서 "이재명 대통령이 발표한 민생회복지원금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경제를 되살릴 수 있는 동력과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으로선 그런 방향이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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