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30일 공개한 '시장안정 조치 내역'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한은과 기획재정부는 시장 안정을 위해 29억6000만 달러를 순매도했다. 두 분기 연속 매도 우위를 유지했지만 순매도 규모는 직전 지난해 4분기(37억5500만 달러)보다 줄었다. 지난해 계엄사태 이후 원·달러 환율이 1400원 후반대까지 치솟으며 원화가 지나치게 저평가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다.
이달 들어 1300원 중반대까지 내린 원·달러 환율이 향후에도 완만한 하락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이유는 미국 재무부와 우리나라 외환당국이 같은 방향을 바라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미 재무부는 기축통화로서의 달러 강세를 추구하면서도 통상 협상에서 환율 정책은 달러 약세에 무게를 두고 있다. 무역 상대국 통화가 과도하게 절하됨으로써 수출 경쟁력을 갖는 것을 견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의 이런 기조는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도 나타난다. 재무부는 이번 환율보고서에서 "환율 조작국에는 대통령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관세 권한'을 활용하도록 권고하겠다"고 명시했다. 환율에 의도적으로 개입하는 국가엔 관세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경고를 보낸 것이다.
환율보고서에는 전에 없던 국민연금 해외 투자와 관련한 언급도 나왔다. 국민연금은 그동안 수익성 강화를 위해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늘려왔는데,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하기 위해선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사야 한다. 그러나 한국은행과 외환스와프를 통한다면 국민연금이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사지 않아도 되므로 오히려 원화 가치 하락(달러 가치 상승) 압력이 줄어든다.
사실상 현재 우리나라 외환시장 환경은 자국 제조업 육성을 위해 달러 약세를 원하는 미국 정부의 이해관계에 맞아떨어진다. 미 재무부가 환율 하락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환율 정책을 하나의 통상협상 카드로 쓸 수 있다. 정부 안팎에선 한은이 한 분기 시차를 두고 공개하는 분기별 시장안정조치(외환 거래액) 내역을 월별 공개로 변경하는 방안 등이 한·미 환율 협상 과정에서 거론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트럼프 1기 당시 환율 협상에 관여했던 정부 고위 관계자는 "미 재무부가 2017년 환율보고서에서 한국을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하고 개입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압박했는데 당시 분기별 공개는 상당히 전향적인 협상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는 원·달러 환율이 아직 높은 수준이기에 외환당국이 낼 수 있는 협상카드는 당시보다 제한적이며 외환시장의 성장으로 월별 공개 부담도 당시보다 크지 않아 불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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