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와 이재명 정부 얘기다. 진보 정권이라는 인적·이념적 동질성은 차치하더라도 공통점이 너무 많다. 일단 두 정부 모두 '대통령 탄핵'이란 비정상적 혼란 속에서 집권했다. 오랜 우방인 미국 대통령도 공교롭게 트럼프다. 그 트럼프가 관세를 무기로 오랜 국제무역 질서를 뒤흔드는 상황도 똑같다.
경제 여건도 유사하다. 잠재성장률 하락, 성장동력 부재, 고령화·저출생 등 경제·사회의 구조적 여건도 별반 다를 게 없다.
특히 ‘주가’와 ‘집값’ 등 경제지표 흐름은 똑닮았다. 먼저 주가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한 달간 코스피 지수는 142포인트 올랐다. 이전까지 1900~2100에 갇혀 있던 증시는 문 정부 출범 이후 가파르게 상승했고 그해 10월 2500선을 돌파했다. 이재명 정부는 더 드라마틱하다. 대통령 취임일(6월 4일)을 전후해 코스피 지수는 놀랍도록 뛰었다. 2000 후반대 ‘박스피’를 벗어나 한 달도 안 돼 3100을 찍었고, 7월에도 3000선을 유지 중이다.
‘집값’ 추이는 거의 데칼코마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부터 부동산과의 전쟁을 벌였다. 집권 40여 일 만에 첫 부동산대책인 6·19 대책을 내놨다. 흡사 데자뷔처럼 이재명 정부 초기 집값도 들썩이고 있다. 23일만에 첫 부동산대책(6·27 대책)도 내놨다. 진보정권이 들어서면 집값이 뛴다는 가설이 이번에도 들어맞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적잖게 들린다.
학교 시험으로 치자면 8년 전과 같은 문제가 이재명 정부 앞에 출제된 셈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답은 틀렸다. 문재인 정부의 답안지는 과도한 이념 편향으로 가득했다. 경제 문제까지 ‘내 편’과 ‘네 편’으로 나눠 대응했다. 집 가진 이(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기업을 기득권 세력으로 여겼다. 그 결과 집값은 28번의 대책으로도 못 잡았고, 기업 경쟁력 제고 등 성장동력 복원에도 실패했다.
이재명 정부는 다를까. 일단 확실히 이념적 색채는 줄었다. 대통령도 ‘실용’을 강조한다. 탈원전도 고집하지 않는다. 기업을 대하는 자세도 문 정부에 비해 유연해졌다는 게 현재까지 재계 평가다.
정부 출범 이후 1번 문제(뛰는 집값)에 대한 풀이 과정도 문재인 정부 때와 다르다. 2017년 6월 집값 상승기에 문재인 정부가 내놓은 일성은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었다. 반면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집값 문제를 이념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국민의 자산 증식 수단이 부동산에 쏠려 있다는 점만 강조했을 뿐, 다주택자를 투기세력으로 지칭하지도 않았다. 대신 주식 시장을 활성화해 선순환 흐름을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2번 문제인 상법 개정에 대해서도 현재까지는 유연한 편이다. 거대 여당이 의석 수로 강행하는 대신 야당과 경제계의 우려도 충분히 듣겠다는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이재명 정부가 앞으로도 이런 기조를 유지할 지는 두고 볼 문제다. 6·27 대책으로도 집값이 잡히지 않는다면 그래서 서민·중산층의 여론이 악화된다면 언제든 '이념적 대응'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노동 정책, 대·중소기업 불균형 등 해묵은 갈등 이슈들이 곧 테이블에 오르게 된다. '내 편'과 '네 편'이란 편가르기가 극심한 문제들이다.
8년 전 문재인 정부는 '20년 집권론'을 호기롭게 외쳤다. 그러나 5년 만에 정권을 내줬다. 경제 문제를 '실용' 대신 '이념'으로 풀어서 오답을 써 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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