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비이락일까? 상법개정 전에 지분매각하는 중소·중견기업 경영진들

  • 실리콘투, 특수관계인 등 260억 상당

  • 7월 사흘간 자사주 매도 사례 5건

  • 증권가선 '이사 충실의무 확대' 연관

  • 지배주주 사익 추구 등 배임에 엄격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시스템]
코스닥 상장사 실리콘투는 지난 2일 공시를 하나 올렸다. 김성운 대표 등 경영진과 특수관계인 11명이 총 260억원 상당 지분을 매각했다는 내용이었다. 사측이 밝힌 매각 사유는 '상속세 납부를 위한 재원 확보'. 하지만 시장에선 다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 확대한다'는 상법 개정안 처리와 관련 있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다. 

상장사 경영진의 지분 매각이 최근 두세 달 사이 잇따르고 있다. 경영진 등 내부자들이 보유 지분을 매각하는 것은 합법이지만 통상 주가에는 '악재'로 작용한다. 회사 내부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경영진이 매도하면 이를 '고점 신호'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어서다. 이에 일각에선 상장사 경영진의 지분 매각이 상법 개정안 때문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7월 들어 사흘 동안 상장사 임원 등 내부자가 장내에서 1억원 이상 자사주를 매도한 사례는 총 5건으로 집계됐다. 월별로 살펴보면 1월 25건으로 시작해 2월 42건, 3월 22건, 4월 45건, 5월 46건, 6월 32건 등 꾸준히 늘고 있다.

기업별로 보면 실리콘투는 지난 2일 공시를 통해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 지분율이 51.18%에서 50.53%로 감소했다고 밝혔다. 김성운 대표는 지난 6월 23일(6만2000주)과 30일(5만6000주) 두 차례에 걸쳐 총 11만8000주를 매각해 약 70억원을 현금화했다. 김 대표 외에도 배우자인 신은하씨, 손인호 경영전략이사, 최진호 영업총괄이사 등 특수관계인 10명이 지분 매각에 동참했다. 이들이 현금화한 총액은 185억7659만원에 달한다. 김성운 대표가 매각한 사유는 상속세 납부 재원 마련이다. 최근 주가가 많이 오른 만큼 일부 지분을 매각한 것으로 보인다. 

실리콘투 외에도 최근 지분을 매각한 중소·중견 상장사 오너 일가와 경영진은 많다. 김용운 HPSP 사장은 약 9억8612만원,나원균 동성제약 대표는 2억9670만원, 최대성 로보티즈 부사장은 6억3360만원, 박정현 한중엔시에스 전무이사는 1억4850만원 규모의 지분을 각각 처분했다.

이 같은 내부자의 주식 매도는 크게 문제될 게 없는 합법 행위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들은 회사 경영진 등 내부 임원의 매도를 '고점 신호'로 받아들이는 등 민감하게 반응한다. 

실제로 지난 2일 경영진 지분 일부 매각 공시가 나온 뒤 실리콘투 주가는 KRX 정규장에서 8.66% 급락해 투자자들의 불안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했다. 3일에도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5.37%(3000원) 하락한 5만2900원에 마감했다. 연초 3만3700원이던 실리콘투 주가는 공시 직전인 지난 1일에는 6만1200원까지 오르며 81.6% 상승률을 기록한 상태였다. 상승 폭이 컸던 만큼 공시 이후 주가 변동성이 더욱 부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증권가에서는 상장사 내부자들의 지분 매각이 늘어나는 추세를 상법 개정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 여야는 2일 상법 개정안 처리에 합의한 뒤 3일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날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의 골자 중 하나는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전체 주주로 확대한다'는 조항이다. 

해당 조항은 '지배주주의 사익 추구' '이해상충' '내부자 거래' 등 고의적 배임 행위를 엄격히 제한하는 게 핵심이다. 회사 경영진의 의사 결정이 대주주에게만 이익이 되고, 일반주주에게는 손실을 끼쳤을 때 배임 혐의까지 적용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이다. 이번 실리콘투 경영진의 대규모 지분 매각으로 주가 하락이 발생했을 때 일반주주들이 문제 삼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 조항(이사 충실의무 확대)은 유예기간 없이 공포 직후 즉시 발효될 예정이다. 이달 안에 시행된다는 의미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상법 개정안 발효 이후엔) 단순 공시로 내부자의 지분 매각을 정당화하기 어려울 수 있다"며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가 적용되면 '매각 사유가 납득 가능한지' 자체가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매각 시점이나 규모, 매각 사유가 주주의 신뢰를 해치는 수준이라면 법적 책임 여부를 놓고 다툼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