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기고] 역대 대통령의 경제 성적표와 이재명 대통령의 숙제

사진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사진=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

총 31조8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이 지난 4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지난 5월 여야가 합의한 총 13조8000억원 규모의 추경에 이어 두 번째다. 이재명 대통령의 간판정책인 전 국민 소비 지원금, 지역화폐, 부채탕감이 이번 추경의 핵심이다. 선거공약이었던 데다가 문재인 정부의 재탕이라 신선하지는 않다. 국민의 입장에서는 갑자기 공돈이 생기고 지역화폐의 할인 혜택이 늘어나면 당연히 신이 나겠지만 국민이 좋아하는 정책이 좋은 정책인 것은 아니다.

부채탕감은 필요하다. 그러나 새 대통령 취임 맞이 정례 행사처럼 부채탕감 방안과 새로운 기구가 만들어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가계 부채는 날로 늘어가고 빚 돌려막기 다중채무자도 급증하고 있어 부채탕감 수요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도덕적 해이 방지 대책은 보이지 않고, 기준은 점점 느슨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채탕감 대상은 대출 원금 1500만원 이하, 연체 10년 이상인 장기 소액 연체 채무였다. 당시에도 논란은 많았지만 사회적 순기능 관점에서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기준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금액은 5000만원으로 늘었고 연체 기간은 7년으로 줄었다. 소액 장기 연체의 기준이 그때그때 정부 맘대로 바뀌고 점점 더 관대해지는 것에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탕감 기준이 느슨해질수록 성실 상환자의 상실감과 분노는 커지게 마련이고 도덕적 해이를 부르는 유인도 커지는 법이다. 반복되는 빚 탕감 정책이 저소득·저신용 서민계층에게 고금리 대출의 개미지옥으로 빠지는 지름길을 터주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재명 정부는 급속히 나빠진 경제 상황 때문에 추경을 서둘렀다고 하는데, 한국 경제 상황이 나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성장 내리막길에 들어선 지는 오래다. 실물경제는 악화일로지만 주식시장, 가상자산 시장, 부동산 시장 등 자산시장은 혹한기를 뒤로하고 작년 말부터 상승장으로 돌아섰고 정권 교체와 동시에 무섭게 타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증시와 코인시장이 하반기에 뿌려질 소비 지원금까지 빨아들일 가능성이 크다. 소비 지원금이 소비보다는 주식시장과 코인시장의 오버슈팅을 부채질하는 건 아닌지 우려스럽다.
 
경기가 하강을 멈추고 상승세를 타고, 자산시장이 불장이 된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는 건 아니다. 전자와 후자는 별개다. 경제가 성장하려면 노동과 자본을 사용하는 생산활동이 늘어나야 한다. 다른 비법은 없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이 늘어 가계의 소득과 소비지출이 늘어나는 선순환이 필요하다. 한국 경제 상황이 나쁜 건 그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중 유동성은 넘쳐나지만 그것이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지 않고 부동산 시장으로 몰리는 기형적 현상이 고착한 결과다.

지난 20여 년간 민간소비 증가율은 경제성장률을 크게 밑돌았다. 윤석열 정부 시기 코로나 팬데믹으로 억눌렸던 민간 소비가 되살아나면서 처음으로 민간소비 증가율이 경제성장률을 약간 앞섰지만 초유의 민간 투자 마이너스 충격 탓에 성장률은 역대 최저치인 2.1%로 주저앉았다. 역대 그 어떤 정부도 해내지 못한 일이 이제 이재명 대통령의 숙제가 됐다. 새 정부가 약속한 ‘진짜 성장’의 성공을 기원하며 투자-고용-소득-소비 증가의 선순환을 재생하는 ‘좋은 정책’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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