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기고] 작물도 살리고, 환경도 살리는 스마트한 양분관리

 
고지연
고지연 국립식량과학원 스마트생산기술과장
매년 봄이 오면 꽃은 어김없이 핀다. 매화와 산수유가 가장 먼저 봄을 알리고 뒤이어 벚꽃과 복숭아꽃, 살구꽃 등 과실수들이 절정을 장식한다. 꽃잎이 진 자리엔 라일락이 향기를 채우고, 여름의 문턱에선 잇꽃과 장미가 거리를 물들인다. 자연은 이렇게 정해진 순서를 따라 계절의 흐름을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올해 봄, 그 질서에 균열이 생겼다. 꽃들의 계절성이 무너진 듯 거의 동시에 피어나며, 평소보다 이른 시기에 봄의 절정이 지나갔다. 기후변화는 폭우나 가뭄처럼 극단적인 모습뿐 아니라, 자연의 시계마저 어지럽히며 우리 일상의 균형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기후변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온실가스의 증가다. 그중 농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아산화질소는 이산화탄소보다 310배나 강한 온난화 효과를 지닌다. 놀랍게도 인류가 배출하는 약 730만t의 아산화질소 가운데 절반 이상인 410만t이 농작물 재배를 위해 사용되는 질소비료에서 비롯된다.
 
질소비료는 인류의 식량 생산량을 비약적으로 높인 혁신이었다.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해 작물에 공급하면서 농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됐고 그로 인해 급격한 인구 증가에 따른 식량 수요도 감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흡수되지 않은 비료는 대기로 날아가거나 빗물에 씻겨 강과 바다로 유입되며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개발한 도구가 오히려 생존을 위협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비료 사용을 전면 중단할 수는 없다.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농업이나 유기농이 일부 실현되고 있지만, 수확량이 상대적으로 적고 넓은 면적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덜 쓰는 것'이 아니라 '더 잘 쓰는 것'이다.
 
즉, 생산량을 유지하면서도 환경 부담을 줄이기 위해 비료를 보다 정교하고 영리하게 사용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지금까지는 토양의 양분 상태를 확인한 뒤, 1년 동안 작물 생육에 필요한 비료를 미리 공급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 방식은 과잉 공급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될 수 있다. 가장 바람직한 방법은 작물 생육 시기에 맞춰 필요한 양만큼 공급하는 것이다.
 
최근에는 센서나 영상 기반의 스마트 농업기술을 이용한 양분 관리가 주목받고 있다. 현재 진행 중인 연구에는 초분광영상을 활용해 작물의 영양상태를 진단하고 결핍된 영양소를 파악하는 기술과 실시간 토양양분 센서를 통해 질소, 인산, 칼리 등 주요 영양소를 측정해 양액재배지와 농경지의 토양을 진단하는 기술이 있다. 아직 농업 현장에 바로 적용하기에는 기술적·현실적 제약이 따르지만, 일부 기술은 연구개발 단계에서 그 효과가 확인되고 있어 긍정적인 변화가 기대된다.
 
농업이 기후위기의 피해자이자 동시에 가해자라는 이중적 위치에서 벗어나, 기후 해법의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기술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단순히 작물을 키우는 데 그치지 않고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농업으로 나아가야 한다.
 
앞으로 농업기술이 더욱 발전하고 스마트한 양분 관리가 널리 확산된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계절의 흐름과 자연의 풍경을 후세대도 함께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매년 봄, 꽃들이 차례로 피어나며 자연의 시간을 알려주는 그 평화로운 장면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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