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기차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유럽 배터리 시장이 글로벌 격전지로 떠올랐다. 한국 기업들은 헝가리를 전략 거점으로 삼아 현지화와 기술력으로 중국의 물량 공세를 돌파하려 하고 있지만, CATL과 BYD 등 중국 기업들의 대규모 생산 공격으로 경쟁 강도가 한층 높아지고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유럽은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며 배터리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헝가리는 현재 연간 87GWh의 생산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250GWh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는 유럽 전체 수요의 약 35%를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생산량 기준 세계 4위권 진입을 목표로 한다.
한국 기업들은 기회를 선점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였으며, 현재 공장을 가동 중이다. 삼성SDI는 괴드 지역, SK온은 코마롬과 이반차 지역에 공장을 두고 BMW, 폭스바겐, 스텔란티스, 메르세데스 등 주요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한다. 한국산 소재와 기술은 안정성과 성능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유럽 고객사들의 신뢰를 확보하고 있다.
또한, 리튬 수산화물, 무수불산(AHF), 마그네슘 등 핵심 원자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공동 투자와 현지 재가공 설비를 마련했다. 철도 기반 운송망을 운영하며, EU의 탄소저감 정책과 원산지 규정 대응을 위해 재활용 네트워크를 확대하는 등 공급망과 환경 규제 대응도 동시에 진행 중이다.
헝가리 정부의 지원도 한국 기업 현지화 전략을 뒷받침한다. ‘National Battery Strategy 2030’을 내세워 배터리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외국인 투자 기업에는 세제 혜택과 현금 보조금, 맞춤형 부지를 제공한다. 삼성SDI와 SK온은 재생에너지 사용 확대, 탄소 배출 모니터링, 친환경 인증 확보 등 EU 규제 대응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다. CATL, BYD, EVE에너지 등 중국 기업들은 막대한 보조금을 앞세워 유럽에 대규모 공장을 건설하고 있으며, 현재 가동 중인 생산량과 건설 중인 예정 생산량을 합하면 약 500GWh에 달한다. 한국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합산 177GWh와 비교할 때, 중국 단일 기업이 한국 전체를 능가할 정도의 규모다. 실제로 한국 기업들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2023년 60.4%에서 올해 1분기 37.2%로 떨어지며, CATL 단일 기업에도 밀렸다.
이에 맞서 한국 기업들은 핵심 공정을 비공개로 유지하고, 협력사와 NDA를 체결하며, 현지 인력 교육을 통해 기술 유출을 막고 있다. EU 연구개발 프로그램 참여, 헝가리 대학·연구소 및 글로벌 기업과의 공동 연구를 통해 기술 주도권 확보에도 나서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들은 단순히 공장을 짓는 것을 넘어, 공급망 안정성과 기술 신뢰도, 현지 서비스까지 동시에 확보해야 유럽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기술과 현지화 전략이 제대로 맞물릴 때 시장 점유율 방어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경쟁이 단순한 생산 거점을 넘어 글로벌 전기차 생태계의 주도권을 좌우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 기업들은 기술력과 현지화를 무기로 중국의 물량 공세를 돌파해야 한다. 공장 설립뿐 아니라 현지 대학·연구소와 협력해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이 필수적"이라며 "정부의 전략적 지원과 기업의 선제 투자가 맞물릴 때만 유럽에서 주도권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