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뷰] 반도체 산업에 영업익 기준 성과급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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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일용 아주경제 산업부 차장 [사진=아주경제DB]

지난해 성과급 배분을 놓고 SK하이닉스 사측과 노조의 입장이 평행선을 그리고 있다. 사측은 기본급 1500%+α에서 1700%+α로 성과급(PS)을 상향하는 안을 제안했지만 노조는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라는 기존 요구안을 고수하고 있다.

증권가에서 올해 SK하이닉스가 창사 이래 최대인 33조원대 영업이익을 낼 것으로 예측하고 있으니 3조3000억원가량을 직원들에게 성과급으로 배분하라는 요구다.

SK하이닉스 노사는 입장 차를 좁히기 위한 협의를 계속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주까지 타협안이 나오지 않으면 다음 주에는 조정신청을 하겠다는 게 노조 측 입장이다. 노동위원회 조정마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남은 것은 쟁의행위뿐이다. 인공지능 반도체의 핵심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선도하며 창사 이래 최대 호황(슈퍼사이클)을 맞이한 SK하이닉스가 노사 갈등으로 파업 위기에 처한 것이다.

노조가 근거 없이 영업이익의 10%를 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SK하이닉스 노사는 2021년 성과급 지급 기준을 SK그룹이 흔히 활용하는 경제적 부가가치(EVA)에서 영업이익으로 바꾸고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다만 재원으로 활용한다는 내용을 놓고 노사 간 입장 차가 크다. 사측은 기본급을 기준으로 성과급을 지급하고 남는 재원 중 절반은 연금으로, 절반은 회사 미래를 위한 투자금으로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반면 노조는 지난해에도 재원을 모두 성과급으로 소진하지 않았다며 올해는 모두 성과급 지급에 활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도체는 조선·해운·석유화학 등과 함께 대표적인 사이클(순환) 산업으로 꼽힌다. 호황기(업턴)에는 막대한 매출·영업이익을 내지만 불황기(다운턴)에는 큰 영업적자를 기록한다. 호황기에 벌어들인 돈으로 연구개발과 설비 확충을 하며 불황기를 견뎌내야 한다. 언제 호황·불황이 올지 예측하는 것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ARPU(가입자당 평균 매출)를 기반으로 매년 안정적인 영업이익을 내고 다음 해 매출·영업이익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통신 산업 등과는 결이 다르다. 

통신 같은 안정적인 산업에선 분명 영업이익 기반 성과급이 합리적인 제도일 수 있다. 일례로 KT 노사는 2021년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합의했고 지금까지 큰 문제 없이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SK하이닉스 노사가 영업이익 기반 성과급을 합의한 배경에도 당시 SK하이닉스 주요 경영진이 통신 사업 출신 인사로 구성된 게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사이클 산업인 반도체가 주력인 SK하이닉스에 통신 산업의 노사 관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일례로 SK하이닉스는 2023년까지만 해도 낸드 플래시 점유율 경쟁 등으로 인해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그런데도 회사는 직원 사기를 북돋우려고 성과급 지급을 결정하기도 했다.

막대한 HBM 판매량에 기반한 호황이 언제까지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SK하이닉스 노사가 소탐대실하는 우를 범하지 않고 전향적인 입장에서 성과급 관련 합의를 해야 하는 이유다.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가 선행돼야 회사가 지속 가능하고 직원들의 고용 안정성까지 보장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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