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앤서니 브라운이 그림책에 담아온 변치 않는 철학이다.

스타일의 완성은 시간과 배움 속에서
그의 그림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독창적이다. 그러나 그 스타일은 하루아침에 완성된 것이 아니다. 앤서니 브라운은 “그림책을 제작하면서 나이가 들고,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스타일이 구축됐다”고 말한다. 한 번 완성된 스타일은 굳이 바꾸려 하지 않았다. 이는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자신이 진정으로 표현하고 싶은 세계를 향한 확고한 믿음에 가깝다.

어린이에게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50년간 수많은 어린이를 만나 온 그는 “어느 나라든 조금은 다르지만, 기쁨과 슬픔을 공유하는 건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근 미디어 환경 변화 속에서 그림책은 위기를 맞고 있다. “매체가 발달하면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이 줄어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관심이 부활하길 바랍니다.”
그는 특히 창의적인 어린이들에게 그림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많은 어린이를 만나는데, 어린이에게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님이 ‘이제는 제대로 된 책’을 읽으라고 하는 경우가 많죠. 시각적인 즐거움을 주는 그림책에 계속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면 좋겠습니다.”

‘가르치는 책’이 아닌 ‘즐기는 책’
많은 작가들이 교육적 메시지를 강조하지만, 브라운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느낌의 책은 만들지 않는다”고 단호히 말한다. 대신 아이들이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담고, 열린 결말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한다. “제가 즐겁게 만들었으면 좋겠고, 아이들이 책을 보면서 즐기는 게 중요합니다.”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광고, 그래픽 디자인, 의학 일러스트레이션, 연하장 디자인 등 다양한 직업을 거친 그는 우연히 출판사에 연하장 디자인을 들고 갔다가 그림책 제안을 받았다. 그렇게 1976년 첫 작품을 출간한 이후, 그는 쉼 없이 작품 세계를 넓혀왔다.

숨은 그림과 상징의 세계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 속에는 늘 숨은 디테일과 상징이 숨어 있다. “초현실주의 작가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평범한 의자의 그림자가 구멍처럼 보이는 식이죠. 평범한 사물을 새로운 무언가로 바꾸는 건데, 사물의 이미지를 사물 자체로 동일시하는 관습을 깨는 역할을 합니다. 배경에 디테일을 집어넣는 것도 글로 전달하지 못하는 뉘앙스를 그림으로 전하기 위해서죠.”
처음에는 이유 없이 재미로 넣던 숨은 그림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는 그것들이 또 다른 이야기를 전하는 중요한 장치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반복되는 ‘고릴라’의 의미
그의 작품 속 고릴라는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고릴라와 침팬지를 “인간과 가까운 유인원의 가족”이라 부른다. “인간도 동물이고, 고릴라와 멀지 않은 가까운 사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고릴라는 종종 인간보다 더 인간답게 느껴진다.

밝음 속의 어둠, 그리고 ‘연민’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은 대부분 밝고 유쾌한 분위기를 띠지만, ‘숲속으로’나 ‘터널’ 같은 작품에서는 어린이들이 느끼는 고독, 불안, 공포를 담아낸다. “모든 어린이는 근심과 걱정이 많죠. 아이들에게 완벽한 책, 완벽한 세상을 보여 주고 싶지는 않아요. 실제로 존재하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늘 관심을 갖는 주제는 ‘연민’입니다.”

영감의 원천
앤서니 브라운이 얻는 영감은 어린 시절 경험에서 비롯된다. “우리가 겪는 첫 경험은 오래 남고, 결국 어른이 된 우리의 토대가 됩니다.” 그는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받은 영향과 함께, 자신만의 스토리보드를 거듭 수정하며 작품을 완성한다.

가장 어려웠던 순간
90년대 후반, ‘공원에서’를 제작하던 그는 슬럼프에 빠졌다. “앞으로 그림책 작가로서 어떻게 될지, 미래가 잘 보이지 않았죠.” 그러나 1997년 출간한 ‘꿈꾸는 윌리’를 만들며 그는 다시 깨달았다. “내가 좋아하는 건 그림과 글 사이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구나.” 이 깨달음은 그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디지털 시대, 그림책의 힘
유튜브와 애니메이션이 지배하는 시대에 그림책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앤서니 브라운은 “영상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그림책은 가만히 놓고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느림 속에서 독자는 더 많은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
그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아들과 딸, 네 명의 손주, 강아지 알버트, 그리고 여자친구입니다.” 화려한 명성이나 수상 경력이 아닌,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를 꼽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끝까지 붓을 놓지 않겠다는 약속
언젠가 은퇴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단호하다. “죽기 전까지 끝까지 그림책을 만들 겁니다. 그림책이 쇠퇴하더라도, 제 스스로라도 만들 겁니다.”
사랑을 잊지 말 것
세상이 빠르게 변하는 지금,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그는 짧고 굵게 답한다. “사랑입니다.” 그리고 바쁜 일상 속에서 소중한 것을 잊고 사는 사람들에게 전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가자지구의 상황 같은 현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50년 동안 그는 수많은 어린이와 어른들에게 상상력과 따뜻함을 전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발견의 기쁨을, 어른들에게는 잊었던 마음의 온기를 선물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새로운 책 속에 숨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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