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그래픽 아티스트 제프 맥페트리지는 늘 ‘단순함’ 속에서 강렬한 울림을 만들어왔다. 선과 색, 형태를 최소화하면서도 깊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작업은 한눈에 직관적이지만, 그 안에 숨어 있는 층위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그는 어떻게 지금의 자리에 올 수 있었을까. 그는 스스로를 “평생 그림과 함께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쩌다가 아티스트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삶은 우리 모두에게 방황하는 길과도 같지만 저는 평생 동안 그림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림은 제 작업과 삶을 이끌어왔죠. 제가 만든 것들 속에 존재하는 독창성은, 연필과 종이와 함께 방에 틀어박혀 보낸 무수한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그림은 선과 색, 형태를 최소화하면서도 보는 이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단순함’은 그에게 단순한 비움이 아니다. “아무것도 아님은 아니지만, 매우 균형 잡힌 방식으로 거의 존재하지 않는 듯한 이미지”라는 그의 정의는 단순함을 본질과 감정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자인과 예술의 경계에서맥페트리지는 그래픽 디자인과 순수 예술을 자유롭게 오가며 활동한다. 그는 두 영역의 차이가 곧 자신의 흥미의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 둘은 매우 다르고 바로 그 차이 때문에 계속 흥미를 느낍니다. 저는 언제나 제 상황, 맥락, 변해가는 제 삶, 읽거나 본 것들에 반응하고 있습니다. 제 작업에는 일관성이 있지만 동시에 다양한 요소로 가득하죠. 아주 다양한 인풋들이 있고, 그래서 아웃풋도 크게 다릅니다.”
브랜드와 협업할 때도 그는 명확한 기준을 가진다. “제가 제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여지가 있다고 확신하는 프로젝트만 맡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모두의 시간을 낭비하는 일이니까요.” 상업적 협업에서도 자신의 시각적 언어를 잃지 않는 비결은 바로 이 원칙이다.
아이디어의 여정, 스케치의 과정아이디어를 떠올리는 순간을 묻자 그는 등산에 비유한다.
“등산과도 같아요. 익숙한 곳에서 시작해 새로운 곳에 도달하는 겁니다. 제 최고의 작업은 마음이 아주 열려 있는 상태에서 나오기 때문에 스케치 과정은 그 열린 마음을 찾는 과정입니다. 제가 놀라게 되면 그제야 반응할 무언가가 생기죠. 그리고 이 과정은 다시 시작됩니다. 반복되는 거예요.”
영감의 원천을 묻자 그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는다. “사실 일상에서 특정 장면을 보며 떠오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서와 음악이 큰 영감의 원천이에요. 책은 제 내면을 재배치하는 방식이고, 음악은 저를 다시 프로그래밍하죠. 여행과 삶의 경험들도 영향을 주지만 그것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아날로그의 속도, 디지털의 한계오늘날 대부분의 예술가가 디지털에 의존하지만, 맥페트리지는 여전히 아날로그 작업을 고집한다.
“아날로그 방식은 제 생각의 속도와 똑같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디지털 도구는 다른 속도로 작동하죠. 너무 빠르기 때문에 컴퓨터로 작업할 때는 얕은 사고의 느낌이 묻어납니다. 물론 디지털은 유용하고 필수적이기도 하지만, 제 작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주 작습니다.”
그의 그림 속 ‘움직임 없는 순간’ 역시 이러한 태도와 연결된다. “조용하지만 매력적인 작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수십 년 전, ‘사람을 울게 할 수 있는 로고’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실제로 해보진 않았지만 저에겐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예술가의 삶이란 무엇일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저는 전형적인 ‘예술가의 삶’을 사는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 삶은 전형적이지 않아요. 어떤 이들에게는 제 삶이 매우 예술적이고,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하게 보일 수도 있죠. 하지만 확실한 건, 제 삶은 전적으로 제가 감당할 수 있고 편안하게 느끼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그가 지키고 싶은 삶의 태도는 분명하다. “관점, 자기 인식, 겸손, 행복.” 성실함과 진정성을 잃지 않고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그의 핵심 가치다.
끊임없이 작업하면서도 지치지 않는 이유를 묻자 그는 “듣지 않는 힘”이라고 답했다. 외부의 소음과 간섭을 차단하고 자신만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 그것이 오랜 시간 창작을 이어갈 수 있는 비결이다.
새로운 도전과 메시지최근 그는 작은 오일 페인팅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배우는 시간은 정말 멋진 경험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탐구자이자 학습자로서의 태도를 잃지 않는 그의 모습은 인상적이다.
앞으로의 꿈을 묻자 그는 웃으며 “영화로 말해야 할 질문”이라며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여전히 자신이 어디에서 동력을 얻는지 탐구하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예술을 시작하기를 주저하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전한다.
“그런 자기 의심은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며 과정의 일부라는 걸 알았으면 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마주하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중요한 건 그 의심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명상을 하듯 마음을 억누르기보다는 소음을 끌어안으세요. 조용한 방을 기다리지 말고, 소음이 가득한 현실에서 예술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제프 맥페트리지의 예술은 겉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는 깊은 사색과 태도의 힘이 녹아 있다. 그의 작품은 소란스럽지 않지만 오래도록 마음을 흔들며, 우리에게도 창작이란 결국 ‘자기만의 리듬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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