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기술의 패권을 놓고 벌이는 글로벌 경쟁이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초기의 '생성 AI' 열풍이 대형 언어 모델(LLM)의 화려한 텍스트와 이미지 창작으로 시장을 사로잡았다면, 이제 무게 중심은 '추론' 영역으로 급속히 이동 중이다.
생성 AI가 창의적인 콘텐츠를 쏟아내는 '예술가' 역할을 했다면, 추론 AI는 산업 현장에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분석하고 의사결정을 내리는 '전략가'로 진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한 기술 트렌드가 아니라, AI가 일상과 비즈니스를 재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빅테크 기업들이 산업 현장에서 실시간 판단과 의사결정을 가능케 하는 추론형 AI에 올인하면서 반도체 칩, 언어 모델, 데이터라는 세 축을 둘러싼 치열한 레이스가 본격화되고 있다.
16일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의 보고서에 따르면, 글로벌 AI 추론 시장은 2024년 972억4000만 달러(약 130조원) 규모에서 2030년 2537억5000만 달러(약 340조원)로 160% 이상 폭발적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이 수치는 초기 생성 AI 시장의 성장 속도를 상회하며, 연평균 복합 성장률(CAGR) 17.5%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 지역이 시장의 38%를 점유하며 선두를 달리고 있지만, 아시아 태평양 지역의 성장률이 19.6%로 가장 높아 한국과 중국 기업들의 기회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폭발적 성장은 에지 컴퓨팅과 온디바이스 AI의 확산, 그리고 5G 네트워크의 보급으로 뒷받침된다.
추론은 학습 완료된 AI 모델이 새로운 입력 데이터를 받아 예측·판단하는 과정으로, 자율주행 자동차의 도로 상황 분석이나 의료 진단의 영상 해석처럼 산업 현장의 '미션 크리티컬' 응용 서비스를 뒷받침하는 핵심 기술이다.
생성 AI가 '무엇을 만들까'에 초점을 맞췄다면, 추론 AI는 '어떻게 판단할까'로 실전성을 강조하는 셈이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 차량에서 카메라가 포착한 도로 표지판과 보행자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분석해 브레이크를 밟거나 방향을 전환하는 과정이 바로 추론의 전형이다.
의료 분야에서는 MRI 영상을 입력으로 받아 종양의 유무와 악성도를 99% 이상의 정확도로 판별하며, 수술 로봇의 움직임을 지시한다. 이러한 실시간성은 지연이 1초를 넘지 않아야 하며, 이는 추론 AI의 효율성을 좌우하는 핵심 지표다.
이 변화의 핵심은 추론의 '연료'인 데이터다. 학습용 데이터가 AI의 기본 지식을 쌓는 데 기여했다면, 추론용 데이터는 산업별 맥락을 반영한 고품질 정보로, AI가 숙련자 수준의 의사결정을 내리게 한다.
학습 데이터가 '지식의 기반'을 형성한다면, 추론 데이터는 '현재 상황의 맥락'을 제공해 AI를 '현장 전문가'로 승격시킨다. 데이터의 양보다는 질이 중요해지면서, 노이즈가 제거된 정제된 데이터셋이 경쟁력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다.
올해 트렌드 중 하나로 꼽히는 '지속적 학습'은 추론 과정에서 새로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흡수해 모델을 업데이트하는 기술로, 데이터의 동적 활용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금융 리스크 지표나 교통 혼잡도처럼 도메인 특화·최신성을 갖춘 데이터는 단순 답변 생성을 넘어 확률적 위험 예측과 시나리오 시뮬레이션을 지원한다. 금융 분야에서 주식 시장의 실시간 변동성을 입력 받아 포트폴리오 재배분을 제안하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데이터 품질이 서비스 경험을 좌우하는 만큼, 기업들은 이를 '게임 체인저'로 인식하고 경쟁 중이다.
실제로 고품질 추론 데이터는 AI의 정확도를 20~30% 향상시킬 수 있으며, 이는 비용 절감과 수익 증대라는 직결 효과를 가져온다. 데이터 프라이버시 규제(GDPR, 개인정보 보호법)로 인해 합법적 데이터 수집이 어려워지면서, 합성 데이터 생성 기술도 추론 시장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빅테크들의 전략 변화도 뚜렷하다. 과거 '거거익선(巨巨益善)' 원칙으로 수천억 파라미터의 거대 모델을 추구했다면, 이제는 실서비스 효율성을 위한 경량화와 아키텍처 최적화에 집중한다. 대형 모델의 높은 비용과 지연이 단점인 반면, 경량 모델은 모바일·앱 환경에서 실시간 추론에 유리하다.
메타의 라마(Llama) 3.2처럼 1억 파라미터 규모의 소형 모델이 등장하며, 에너지 소비를 90% 줄이면서도 성능을 유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구글은 추론 효율성을 높인 소형 모델을 안드로이드 기기에 탑재한 '온디바이스 AI'를 확대하며, 스마트폰에서 음성 인식과 이미지 분석을 클라우드 없이 처리한다. 이는 프라이버시 보호와 네트워크 비용 절감을 동시에 달성한다.
구름 빅밸류 대표는 “AI가 산업별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려면 고품질 추론용 데이터가 필수”라며 “학습용 데이터가 AI의 뇌를 키웠다면, 추론용 데이터는 실제로 가치를 창출하게 만드는 연료이자 실탄”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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