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의 계절은 늘 예기치 않은 변수로 앞당겨지곤 한다.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김경 서울시의원의 불법 당원 모집 의혹에 김민석 국무총리의 이름이 얽히면서, 추석 밥상 위에 서울시장 선거가 먼저 올라왔다. 선거는 아직 8개월이나 남았지만, 이번 사건은 여야 모두에 상징적 의미를 던지고 있다. 무엇보다 현직 오세훈 서울시장에게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진종오 국민의힘 의원이 폭로한 의혹의 핵심은 단순하다. 특정 종교단체 신도 3000명의 개인정보를 확보해 6개월간 당비를 대납하려 했다는 것이다. 액수로 치면 1800만원.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사안이다. 제보 녹취록 속에는 김민석 총리의 이름도 등장한다. 물론 김경 시의원은 정면으로 부인했고, 민주당 지도부도 진상조사에 나섰다. 그러나 이 사건은 '민주당의 내로남불'이라는 프레임을 국민의힘이 손쉽게 들고 나올 명분을 제공했다. 더구나 민주당은 내년 지방선거 최대 승부처인 서울에서 당내 갈등과 불법 논란을 먼저 부각시킨 셈이다.
김민석 총리는 정치적 야심이 큰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이런 의혹에 엮인 순간, 과거 이명박 서울시장과 맞붙었던 시절의 기억이 다시 소환된다. 당시 젊은 패기와 달리 '건방지다'는 평가를 받으며 패배했던 경험은 여전히 정치적 약점으로 남아 있다. 이번 사건은 김 총리가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 해도, 그를 둘러싼 정치적 그림자가 내년 서울시장 선거판을 흔들 가능성을 보여준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력한 후보군을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박주민 의원, 전현희 최고위원, 박홍근 의원, 서영교 의원 등 이름은 여럿 거론되지만, 당내 여론조사에서 오세훈 시장을 앞서는 이는 없다. 결국 외부 영입론까지 흘러나온다. 박용만 전 두산그룹 회장, 한성숙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등이 거론되지만, 두 사람 모두 "정치에 뜻이 없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민주당이 외부 인사에 의존하려는 모습은 과거 박원순, 강금실 사례와 겹쳐 보인다. 박원순 전 시장은 당시 돌풍을 일으켰으나 임기 말 평가가 엇갈렸고, 강금실 전 장관은 선거에서 오세훈에게 패배했다. 외부 영입은 돌파구일 수 있지만, 서울시민에게 안정감을 주는 카드가 되기 어렵다.
그렇다고 서울시장 선거에서 '외부 인사'가 반드시 실패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조순 전 시장은 학자적 연륜으로 성공적인 시정을 이끌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2006년의 오세훈 시장 역시 정치적 외부 인사에 가까웠으나, 오히려 서울시정을 혁신적으로 운영하며 대권으로 이어지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경우는 다르다. 조직 기반이 약하고, 후보군이 중도·보수층까지 아우를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탓이다. 서울은 전국 정치의 바로미터이자 중도 성향이 강한 지역이다. 민주당이 외부 인사를 내세운다고 해서 곧바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무대가 아니다.
현직 프리미엄을 가진 오세훈 시장은 이미 5선 시장으로 기록을 세운 인물이다. 교통, 주택, 디자인, 관광, 청년정책 등에서 굵직한 정책들을 추진하며 성과와 논란을 동시에 안았지만, 분명한 존재감을 유지해 왔다. 내년 선거는 오 시장에게 있어 사실상 마지막 지방선거 무대다. 그가 대권으로 나아가려면 서울에서 압도적인 승리가 필요하다. 추석 밥상에 일찌감치 서울시장 선거가 오른 것은 그만큼 그의 정치적 중심성을 보여준다.
정치에서 타이밍은 곧 승부다. 추석 민심이 오세훈 시장에게 먼저 유리하게 흘러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김경 시의원 사태로 불법 논란을 수습해야 하고, 동시에 김민석 총리라는 유력 인사마저 불필요한 의혹에 휘말리게 됐다. 후보 난립, 외부 영입론, 그리고 표 분산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오세훈을 능가할 인물은 여야를 통틀어 보이지 않는다.
서울은 언제나 한국 정치의 중심무대이자 민심의 바로미터다. 이번 추석 밥상에 올라온 서울시장 선거 이야기는 단순한 가십이 아니라, 내년 대선 지형과 직결된 중대한 신호다. 그 신호는 지금 시점에서 분명히 오세훈 시장에게 유리하게 깜박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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