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어쩔수가없다' 이병헌 "극장과 OTT…변화의 과정이자 딜레마"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배우 이병헌이 tvN 영화 '어쩔수가없다'로 또 한 번 인생의 전선을 마주했다. 25년간 다닌 회사에서 하루아침에 해고된 가장 '유만수' 역을 맡아 벼랑 끝에 선 인물의 절박함과 인간적인 유머를 세밀하게 풀어낸다.

'오징어 게임'과 '남산의 부장들'을 거쳐 현실의 온도를 담아내는 이번 연기에서 이병헌은 유쾌함과 서늘함 사이를 오가며 다시 한번 '이병헌표 리얼리즘'을 증명한다.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의 '유만수'를 단순히 불운한 인물로만 그리지 않았다. 그가 집중한 건 '극단적인 선택에 이르기까지의 설득력'이었다.

"평범한 인물이지만, 그런 인물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여러 시도를 하다가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돼요. 그런데 그런 인물이 왜 그런 결심을 하게 되는지 설득하려면 사실 영화보다는 시리즈로 만들어야 할 만큼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그런 결심을 하기까지의 이유를 보여주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는 짧은 러닝타임 안에서 인물의 감정 변화를 완전히 설득시키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였다고 털어놨다. 

"이건 두 시간짜리 영화잖아요. 모든 걸 그 안에서 설득해야 했어요. 감독님은 그걸 영화적 설정으로 봤고 저도 그 설정 안에서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디테일을 많이 쌓으려 했죠. 결국 '유만수'라는 인물이 왜 그렇게까지 몰렸는지를 납득시켜야 했던 게 저와 감독님 모두의 숙제였어요."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에서 유만수의 외형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감독과 흥미로운 견해 차이를 겪었다고 털어놨다. 캐릭터의 비주얼은 단순한 스타일링을 넘어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장치이기도 했다.

"분장 모델로 두 가지 스타일이 있었어요. 스티븐 맥퀸 스타일과 매즈 미켈슨 스타일이었죠. 저는 개인적으로 매즈 미켈슨의 생머리 스타일이 보기 좋다고 생각했는데 감독님은 스티븐 맥퀸 스타일로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거기에 하와이안 셔츠까지 입으니까 완전히 마약왕 같은 느낌이 나는 거예요. 저는 '이거 너무 센 거 아닌가요?' 싶었는데 감독님은 그게 너무 좋대요. 그래서 그냥 하자는 대로 했죠."

하지만 예상치 못한 지점에서 그 선택은 또 다른 해석을 낳았다.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영이 끝나고 기자들이 쓴 글을 읽는데, 제 생각이랑 비슷한 평이 있더라고요. '찰리 채플린의 모습이 겹친다', '기계화된 사회 속에서 허둥대는 채플린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거였어요. AI 시스템에 적응 못해 우왕좌왕하는 사람처럼, 만수가 갈 길을 잃고 어리둥절해하는 모습이 채플린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감독님께 '이거 의도하신 거예요?' 물어봤더니 '어? 그거까진 생각 못했는데' 하시더라고요. 하하."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가 다루는 고용 불안의 서사는 배우 이병헌에게도 단순히 타인의 이야기로만 다가오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 불안이 직접적인 현실의 문제라기보다, 언제든 흔들릴 수 있는 업계의 구조적 불안과 맞닿아 있다고 말했다.

"저나 감독님, 예진 씨 모두 지금 당장 고용 불안을 느끼는 건 아니에요. 운 좋게 선택받는 입장이죠. 하지만 감독님 주변이나 동료 감독들 중에는 그런 불안 속에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간접적으로는 늘 느껴지죠. 사실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어요. 작품 하나 끝내면 다음 작품이 언제 들어올지 모르니까요. 우리는 지금까지 해온 대로 또 하겠지 하는 안도감이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요."

그는 이번 작품을 준비하며 동료 배우, 감독들과 AI 시대의 불안에 대해서도 자주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AI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이건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현실이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어떤 영상을 보고 웃기다고 보여줬는데 당사자가 '나 그거 찍은 적 없는데?' 하더라고요. 진짜 놀랐어요."

그 불안은 곧 스스로의 영역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두려움으로 이어졌다. 

"저도 '오징어 게임' 때 AI로 만들어진 제 영상이 있더라고요. 이정재 배우랑 저랑 나오는 거였는데 '이거 언제 찍었지?' 싶었어요. 진짜 소름이 끼쳤어요. 기가 막히게 만들어놨더라고요. 그런데 동시에 '우린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감독이 '이런 내용으로 시나리오 써줘' 하면 AI가 바로 쓰고, '이런 풍의 음악 만들어봐' 하면 즉석에서 만들잖아요. 거의 모든 분야가 연결돼 있어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머지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에 맞는 법적 장치나 제도적인 기준이 반드시 생겨야 할 거예요. 할리우드에선 이미 이런 문제를 겪고 있잖아요. 우리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넋 놓고 있다가 잠식당할 수도 있어요. 그건 절대 피해야죠."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어쩔수가없다'의 흥행에 대한 기대와 함께, 현재 한국 영화계가 처한 구조적 현실을 담담하게 짚었다. 그에게 가장 큰 위기의 지점은 영화 산업 자체보다도 극장의 생존이었다.

"영화도 힘들겠지만 사실 제일 힘든 건 극장이에요. 눈앞에 보이게 줄어드는 게 바로 극장이잖아요. 스트리밍 서비스가 생기면서 영화라는 콘텐츠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 만들어지지만, 극장은 정말 눈에 띄게 사라지고 있어요. 가끔 아이랑 영화 보러 가면 '아빠, 아무도 없어 무서워' 하길래 '아빠가 다 빌렸어' 하고 농담을 하곤 하죠. 그런데 웃으면서도 무서워요. 그건 배우로서,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두려움이기도 하거든요. 극장이 사라지는 건 정말 시급한 문제예요."

그럼에도 그는 스트리밍이 가져온 변화의 힘을 부정하지 않았다. 

"스트리밍 덕분에 한국 콘텐츠가 전 세계에 알려졌잖아요. 'K팝 데몬헌터스'가 공개되고 나서 컵라면이 동이 나고 '남산의 부장들'로 남산에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런 걸 보면 '이게 스트리밍의 힘이구나' 싶어요. 예전엔 블록버스터를 찍어도 느끼지 못했던 반응을 '오징어 게임'으로는 열 배로 느꼈어요. 정말 대단한 시대예요. 스트리밍에는 분명 장단점이 있어요. 한편으로는 한국 영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는 기회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극장이 설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이기도 하죠. 결국 우리가 지금 겪는 건 변화의 과정이자 딜레마인 것 같아요."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어쩔수가없다' 주연 배우 이병헌 [사진=BH엔터테인먼트]

이병헌은 올해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2', 영화 '승부', '케이팝 데몬 헌터스', 그리고 '어쩔수가없다'까지 공백 없이 이어지는 행보 속에서 좋은 성과들을 거두었다. 

"저도 놀라워요. 이런 현상과 상황이 기운이 있는 건가 싶어요. 물론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님과 여러모로 맞물려 감사한 작품이었지만, '오징어 게임'이랑 '케이팝 데몬 헌터스' 또 묵혀뒀던 영화가 극장 개봉까지 하면서 다 터지더라고요. 비수기였는데도 반응이 좋아서 신기하고 이게 단순히 성공의 문제가 아니라 현상처럼 느껴졌어요."

데뷔 30주년을 맞은 올해 그는 자신의 여정을 돌아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이걸 말로 하니까 '아, 정말 30년이구나' 실감이 나더라고요. 부국제 MC를 맡게 되면서 제 영화 인생이 영화제의 역사와 함께해왔다는 걸 새삼 느꼈어요. 놀랍기도 하고 '나도 참 수고했다' 싶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불안감도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잘할 수 있을까? 몇 년이 지나도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보고 싶어할까? 그런 생각이 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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