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멀티 플렉스 사이에서 버틴 25년…씨네큐브가 보여준 극장의 시간들

티캐스트 엄재용 대표 [사진=최송희 기자]

광화문 한복판, 25년 동안 같은 자리를 지켜온 예술영화관이 자신의 시간을 돌아보는 자리를 열었다. 독립·예술영화의 '성지'로 불려온 씨네큐브가 25주년을 맞아 영화인과 관객, 정책 당국이 한데 모여 예술영화관의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25년을 함께 그렸다.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씨네큐브에서는 태광그룹 미디어 계열사 티캐스트가 운영하는 예술영화관 씨네큐브 개관 25주년 기념식이 열렸다. 2000년 12월 2일 문을 연 씨네큐브는 현재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진 예술영화관으로, 엄선된 프로그램과 최적의 관람 환경이라는 원칙을 지키며 25년간 독립·예술영화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이날 행사에는 영화감독·배우·배급·정책 관계자 등 수십 명의 영화인이 참석해 씨네큐브의 25년을 함께 축하했다. 예술영화 전용관이 하나둘 사라진 도심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온 상징성을 언급하며 "광화문에 아직 이런 극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소중하다"는 공감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티캐스트 엄재용 대표는 인사말을 통해 지난 25년을 함께해온 관객과 영화인, 극장 구성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쌀쌀한 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바쁜 시간을 내어 씨네큐브 25주년 기념식에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운을 뗐다.

이어 "씨네큐브는 지난 2000년 광화문 바로 이 자리에서 문을 열었다. 도심 속에서도 시민들이 편안하게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던 태광그룹 이호진 전 회장님의 뜻이 담겨 개관하게 됐다. 그로부터 25년 동안 씨네큐브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예술영화관으로 성장하며 한국 예술영화의 흐름과 중심을 지켜왔다. 많은 젊은이들이 영화인의 꿈을 품고 이곳을 찾았고, 시민들에게는 따뜻한 영화 한 편이 큰 위로가 되는 힐링의 공간이 되어 왔다"고 말했다.

또 "올해는 씨네큐브의 역사 속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모았던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을 초청해 특별 기획전을 열었고, 25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헌정 영화 '극장의 시간들' 또한 여러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씨네큐브가 초심을 잃지 않고 25년 동안 한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영화계 관계자분들과 배우 여러분, 꾸준히 씨네큐브를 사랑해 주시는 관객 여러분 그리고 무엇보다 묵묵히 극장을 지켜온 구성원들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엄 대표는 "앞으로도 씨네큐브는 광화문 도심 속 예술영화관으로서 더 좋은 작품과 풍성한 프로그램으로 여러분을 찾아뵙겠다. 지난 25년처럼 앞으로 25년도 여러분과 함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인사를 마무리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최성희 콘텐츠정책국장 [사진=최송희 기자]

정책 당국도 예술영화관의 의미를 짚었다. 문화체육관광부 콘텐츠정책국장 최성희는 축사를 통해 씨네큐브가 한국 예술영화 생태계와 관객의 삶에 남긴 자취를 강조했다.

최 국장은 "오늘 이렇게 씨네큐브 개관 25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돼 정말 기쁘게 생각한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 주신 티캐스트 엄재용 대표이사님, 그리고 이 자리를 준비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나라 서울의 중심인 광화문에서 다양한 색채를 가진 예술영화를 만나는 공간이 25년 동안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뜻깊게 느껴진다. 그동안 씨네큐브는 다양한 작품이 관객과 만나는 창구로서 우리 일상 속 예술영화의 접근성을 넓혀 왔다. 이곳은 관객들에게 단순히 영화를 관람하는 장소를 넘어 영화와 함께 호흡했던 시간과 감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소중한 공간일 것"이라고 했다.

최 국장은 "앞으로도 씨네큐브가 우리 영화 생태계의 다양성을 상징하는 귀중한 공간, 소중한 문화 향유의 장으로 그 역사를 꾸준히 이어가기를 기대한다. 문화체육관광부도 다양한 독립·예술영화가 만들어지고 관객과 만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 지난 25년간 씨네큐브를 지켜오신 관계자 여러분과 오늘 함께하신 영화인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와 축하의 말씀을 드린다. 개관 25주년을 다시 한 번 축하드린다"고 축사를 마무리했다.

기념식에서는 씨네큐브 25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헌정 영화 '극장의 시간들' 특별 상영도 진행됐다. 이 작품은 이종필, 윤가은, 장건재 감독이 만든 세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앤솔로지 영화로 관객·감독·배우 등 서로 다른 위치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극장이라는 공간이 지닌 예술적·사회적 의미를 다시 환기하는 작품이다.

연출을 맡은 감독들도 극장과 씨네큐브에 대한 각자의 감정을 전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한국이 싫어서'를 연출한 장건재 감독은 "광화문에는 시청 광장도 있고 청계천도 있고 씨네큐브도 있다. 씨네큐브 25주년을 축하드린다"라고 짧게 인사를 건넸다.

'우리들' '세계의 주인'의 윤가은 감독은 씨네큐브가 자신의 영화 인생에 남긴 흔적을 떠올리며 "이 극장이 광화문에서 25년 동안 버텨내는 동안, 여기에서 제 인생을 바꿔준 영화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앞으로도 25년, 50년, 100년 오래오래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꿔줄 영화를 많이 상영해 주셨으면 좋겠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다.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탈주'를 연출한 이종필 감독은 "이 광화문 근처에 예전에는 예술영화관들이 제법 있었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며 많이 사라지고 씨네큐브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더 소중해지는 공간인 것 같다. 25주년을 축하드리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전했다.

장건재 감독(왼쪽부터) 윤가은 감독, 이종필 감독 [사진=최송희 기자]

씨네큐브는 25주년을 맞아 연말 기획전인 '2025 씨네큐브 예술영화 프리미어 페스티벌'도 개막했다. 2009년부터 개관일을 기념해 매해 연말 열려온 정기 기획전으로 올해는 25주년을 기념해 11월 27일부터 12월 7일까지 예년보다 한층 풍성한 라인업으로 관객을 찾는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는 짐 자무쉬, 리처드 링클레이터, 미셸 프랑코, 미야케 쇼 등 거장 감독들의 신작은 물론 올리베르 라세, 이가라시 고헤이, 카우테르 벤 하니아 등 주요 영화제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정식 개봉 전 미리 만나볼 수 있다. 예술영화 팬들에게는 연말을 장식할 '프리뷰 상영회'인 셈이다.

관객을 위한 현장 이벤트도 마련됐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1편 관람 시 2026년 캘린더 포스터를 3편 관람 시 페스티벌 기념 머그컵을 증정한다. 또 '여행과 나날' '시라트' '슈퍼 해피 포에버' '파리, 밤의 여행자들' '리틀 아멜리' '바늘을 든 소녀' 등 일부 작품 상영 시에는 A3 포스터 증정 이벤트도 진행돼 치열한 예매 경쟁이 예상된다.

멀티플렉스 중심의 극장 생태계에서 씨네큐브와 같은 예술영화관은 상업성과는 조금 다른 축에서 한국 영화의 다양성을 떠받쳐온 공간이다. 광화문 도심 한가운데서 25년 동안 독립·예술영화의 자리를 지켜온 씨네큐브가 이번 기념식을 계기로 또 다른 25년을 향한 첫 페이지를 넘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