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국납부금과 궁궐 관람료 현실화.
지난 16일 문화체육관광부와 국가유산청 대상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나란히 언급된 사안이다. 즉각적인 결론은 없었지만 메시지는 분명했다. 오랫동안 손대지 못했던 제도를 현실의 기준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최고 정책 결정권자의 언어로 확인됐다. 정책 논의가 다시 공식 테이블에 올랐다는 점에서 이번 업무보고는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으로 평가할 만하다.
출국납부금 현실화는 관광 재정 정상화와 직결된 문제다. 지난해 정부는 해외여행 소비 진작과 경기 부양을 이유로 출국납부금을 1만원에서 7000원으로 인하했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소비 진작 효과는 뚜렷하지 않다. 오히려 관광진흥개발기금 수입이 연간 1300억원 가까이 줄어드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항공권 가격과 물가 상승 등 외부 변수까지 겹치며 감세 효과는 희석됐고 재정 기반만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발언의 의미는 표현의 강도보다 발언의 위치에 있다. 여야 국회와 문체부 장차관, 관광업계가 이미 출국납부금 인상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해 온 가운데 대통령이 이를 직접 언급했다는 사실은 이 사안이 실무 차원을 넘어 정책 판단의 영역으로 올라왔음을 보여준다. “원상복구를 원칙으로 하되 세계적 추세와 국민 정서를 함께 고려하자”는 언급은 방향과 속도를 동시에 제시했다. 기본값은 1만원 복귀, 방식은 단계적·합리적 조정이다.
같은 날 국가유산청 업무보고에서 논의된 궁궐 관람료 현실화 역시 같은 문제의식 위에 놓여 있다. 경복궁과 창덕궁 등 궁궐 관람료는 20년 가까이 사실상 동결돼 있다. 그사이 관리와 보존에 드는 비용은 꾸준히 늘었다. 올해 궁궐 방문객은 외국인 관광객 약 400만명을 포함해 1800만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관람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대통령은 “온 국민이 세금으로 관리비를 대신 부담하고, 실제로 방문하는 소수가 혜택을 누리는 구조는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출국납부금과 궁궐 관람료는 서로 다른 제도처럼 보이지만 구조적 문제는 닮았다. 이용자는 낮은 비용을 부담하고 유지·관리 비용은 일반 재정이 떠안아온 방식이다. 이는 특정 이용자 부담을 줄이는 대신 전체 국민에게 비용을 분산시키는 구조다. 장기적으로는 재정의 지속 가능성과 정책의 설득력을 모두 약화시킬 수밖에 없다.
이번 업무보고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지점은 접근 방식이다. 대통령은 두 사안 모두에서 설명과 설득의 과정을 강조했다. 급격한 인상이 아니라 원칙을 분명히 하고 사회적 수용성을 높이겠다는 태도다. 실제 수요자는 비용을 부담하되 학생과 사회적 배려 대상은 보호하는 설계, 인상분의 목적 외 사용을 차단하는 장치, 집행의 투명성 강화가 함께 논의될 여지도 열렸다.
출국납부금과 궁궐 관람료 현실화는 새로운 부담을 만들기 위한 논의가 아니다. 그동안 미뤄왔던 기준을 다시 세우는 작업이다. 이번 업무보고는 그 논의를 다시 출발선에 올려놓았다. 방향은 제시됐고,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현실화의 물꼬는 이미 트였다. 이제 정책으로 이어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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