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권위와 이익만 누리고 책임은 지지 않는 공직자, 눈 뜨고 볼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부산 해양수산부 업무보고에서 공직사회를 향해 던진 질타는 표현만 놓고 보면 강경했다. 그러나 그 메시지의 본질은 공직사회가 오랫동안 외면해 온 질문을 다시 꺼낸 데 있다. 공직은 무엇으로 평가받아야 하는가. 직위인가, 절차인가, 아니면 결과인가.
 

대통령은 “자리에 앉아 권위·명예·이익·혜택만 누리고 본질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모습은 눈 뜨고 못 봐주겠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특정 인물을 겨냥한 경고라기보다 공직 전반에 누적된 구조적 문제를 향한 선언에 가깝다. 공직자의 판단과 행정의 실행은 곧바로 국민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책임 없는 공직은 결국 사회 전체가 떠안는 비용으로 돌아온다.
 

이번 업무보고의 형식 또한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대통령이 업무보고를 생중계로 진행한 것은 공직의 본질이 국민 앞에 드러나는 일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 선택이다. 우리가 당당하다면 숨길 이유도 없다는 말은 투명성이 미덕이 아니라 공직의 기본 요건임을 상기시킨다. 공개는 공직자를 압박하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책임의 주인을 분명히 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대통령이 특히 문제 삼은 것은 형식화된 보고와 무책임한 리더십이다. “최소한 업무보고서에 자기가 쓴 글자의 의미는 알고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은 자극적 표현이 아니라 상식적인 질문이다. 자신이 책임질 사안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관장이 조직을 이끈다면, 그 조직은 관성으로만 움직일 수밖에 없다. 권한과 책임이 분리된 공직은 신뢰를 쌓을 수 없다.
 

공직사회에서 보고는 오랫동안 통과의례로 굳어져 왔다. 보고서는 정교해졌지만, 그 내용이 실제 정책 판단과 실행으로 이어졌는지는 불분명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문서는 실무자의 노동으로만 남고, 기관장은 형식적 결재와 관행적 발언으로 책임을 대신하는 구조가 반복돼 왔다면, 이번 질타는 그 관성을 정면으로 건드린 것이다.
 

해외 사례는 분명한 대비를 보여준다. 영국에서는 정책 실패가 발생할 경우 장관이 의회에서 직접 설명하고 정치적 책임을 진다. 일본 역시 대형 행정 실패가 발생하면 고위 관료의 거취가 자연스럽게 논의된다. 제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결과에 대한 책임이 직위에 비례해 무거워진다는 인식만큼은 공통적이다. 민주국가에서 책임 없는 고위 공직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고전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한비자』는 “자리에 따른 권한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따른다”고 했다. 『맹자』는 백성의 삶을 해치고도 자리를 보전하는 권력을 가장 경계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한과 책임의 불일치는 조직과 국가를 병들게 해 왔다.
 

주목할 점은 대통령이 말에 그치지 않고 시간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6개월 뒤 다시 업무보고를 받겠다는 언급은 일회성 질책이 아니라 결과를 확인하겠다는 공개적 선언이다. 국민에게도 그때 공직사회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함께 지켜봐 달라고 했다. 공직 개혁은 선언으로 시작되지만, 검증으로 완성된다.

 

대통령은 공직사회 내부의 구조적 문제도 짚었다. 관료제의 특성상 지위가 올라갈수록 현장과 멀어지고, 가장 큰 권한을 가진 사람이 가장 낡은 인식에 머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런 조직에서는 겉으로는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신뢰하지 않는 문화가 자란다. ‘꼰대가 되지 말자’는 표현은 가볍게 들릴 수 있지만, 조직 운영의 핵심을 찌르는 경고다.
 

국회, 야당, 언론, 시민단체의 지적을 수용하겠다는 언급 역시 중요하다. 특히 국회의 지적사항이 실제로 처리됐는지를 점검하겠다는 발언은 행정부 내부 평가에만 의존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공직사회는 스스로를 평가하는 구조만으로는 바뀌기 어렵다. 외부의 감시와 비판이 제도 안으로 들어올 때 변화는 비로소 작동한다.
 

물론 우려도 있다. 공개적 질타가 반복되면 관료사회가 위축되고, 실무자들이 책임 회피적 태도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개혁이 공포로 받아들여질 경우 적극성은 사라진다. 그래서 더 중요한 것은 신상필벌의 기준이다. 잘한 사람은 분명히 포상하고, 못한 사람은 예외 없이 책임을 묻되, 그 기준은 명확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
 

공직사회가 달라지는지는 말의 수위가 아니라 제도의 작동으로 판단된다. 기준 없는 질타는 소음이 되지만, 기준 있는 평가는 조직을 움직인다. 성과 없는 자리는 보장하지 않고, 결과는 인사와 책임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 그것이 이번 질타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개혁으로 이어지기 위한 최소 조건이다.

공직은 안정된 자리를 보장받는 직업이 아니다. 국민의 세금과 권한을 위임받아 결과로 증명해야 하는 자리다. 자리를 지키는 권력은 오래가지 않는다. 결과에 책임지는 공직만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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