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지난 연말 물가폭등에 항의하면서 촉발된 이란 반정부 시위가 심상치 않다. 20일째 전국 중소도시에서 대도시로 확산되면서 단순한 경제난 항의를 넘어 신정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외세의 개입정황도 나타나면서 사상자 숫자가 급증하고, 친정부 맞불 시위까지 벌어지면서 1979년 혁명정권 수립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공개적으로 시위를 독려하면서 군사공격 카드까지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의 개입과 시위 확산 여부에 따라 신정 정권의 붕괴 가능성과 대혼란이 예상되면서 중동에서는 또 다른 전운이 감돌고 있다.
시위의 발단은 파탄지경에 이른 이란의 경제난이었다. 2009년 개혁파들이 일으킨 정치개혁 구호나, 2022년 히잡 사건으로 알려진 마흐사 아미니의 사망으로 촉발된 “여성, 생명, 자유” 운동과는 완연히 다른 먹고사는 문제로 시작되었다. 물론 근본적인 원인은 1979년 이란 혁명 직후부터 47년간 지속되어 온 미국의 고강도 경제제재에서 비롯되었다. 궁지에 몰린 이란의 국내총생산(GDP)은 2010년 약 6000억 달러에서 2025년 기준 3560억 달러 수준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고, 청년 실업도 20%를 넘어섰다. 지난 1년간 소비자 물가 인상률은 공식적으로 42%지만, 체감 물가 상승률은 60~70%에 이른다는 지적이고, 특히 서민 삶에 직결되는 식품 물가 상승률은 무려 75.4%에 달해, 고기와 채소 등 기본 식자재를 구하지 못하는 가정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이란 리알 화폐가치는 끝간 데 없이 추락하여 고정환율에 묶인 1달러는 공식적으로 4만2000리알이지만, 시장에서는 140만 리알까지 거래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커피 1㎏을 구입하기 위해 돈 뭉치 1㎏을 지불해야 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30배가 넘는 환율 차이로 리알화는 휴지조각이 되었고, 모든 돈이 달러나 금, 비트코인 등에 쏠리면서 제도권 경제는 파탄을 맞았다.
그러나, 서방 언론의 시위 보도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부추김과는 달리 이란 정권이 쉽게 무너질 것 같지는 않다. 첫째, 9000만명의 인구로 47년간 미국의 혹독한 제재에도 버텨온 견고한 정권 통제 시스템을 갖고 있다. 둘째는 평화적인 민생시위가 외세의 개입으로 모스크와 관공서 방화, 군경 사살로 이어지면서 폭력적인 시위로 변질되면서 상당부분 대중적 지지를 상실해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정부군의 실탄 사용으로 많은 시위대가 희생되었다. 인터넷이 완전 차단된 상황에서 누구도 구체적인 숫자를 알 수 없으나 사망자가 수천명을 넘어섰다는 보도도 나온다. 이란 당국은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3일간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하고 시위폭도들에게 희생된 100여명의 군경 합동 장례식을 거행하면서 수백만명의 시민 동원으로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다. 16일 최고 종교 지도자가 참석하고, 통상 수백만명의 시민들이 운집하는 금요집회가 시위 확산 차단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물론 가장 큰 변수는 미국의 이란 공격 여부다. 지난 1월 3일 베네수엘라 대통령 궁을 전격 공격하여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를 체포하여 자국 법정에 세운 트럼프식 막무가내 공격이 중동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란 소요사태에 대해 “만약 이란 정권이 평화로운 시위를 벌이는 민간인을 공격한다면 군사적인 공격을 하겠다”는 트럼프의 엄포가 예사롭지 않다. 종전에는 실현 가능성이 낮았던 강대국의 내정간섭이나 주권국가 침략이 베네수엘라 사태로 공공연한 현실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미국의 군사 개입은 간단하지만은 않다. 이란은 베네수엘라나 중동 다른 국가들과는 인구 규모나 역사에서 차원이 다른 국가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랜 반미주의가 뿌리를 내렸기 때문에 설령 이란 신정 정권이 무너진다 해도 미국과 협력 가능한 신정권 창출이 쉽지 않다. 이슬람 혁명 이전 왕정을 이끌던 모함마드 팔라비의 아들 레자 팔레비가 대안으로 부각되고 있지만, 이란 바깥이나 내부에서 조직적인 지지기반이 없어 현 정권 대안으로 보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다. 이처럼 이란 내부에 대중적 지지를 받는 야권지도자나 조직적인 풀뿌리 시민단체가 존재하지 못하다는 것이 평화적인 정권창출에는 큰 불안요인이다. 현재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가장 큰 딜레마일 것이다. 거짓 정보를 흘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하여 독재자 사담 후세인을 모멸적으로 제거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이라크는 여전히 강력한 반미국가로 남게 되었고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예멘 등에서도 독재자가 제거되었지만, 어느 곳에서도 친미 정권이 들어설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교훈을 미국은 뼈아프게 절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당장의 협력 가능한 정권 창출보다는 이란 자체를 대혼란에 빠뜨려 미국 국익 최우선 전략을 채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이스라엘 정권의 이해관계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헤지볼라, 하마스, 시리아 민병대, 이라크 민병대, 예멘 후티 반군 등 이란의 대리세력으로 이스라엘을 위협하던 무장 조직들이 거의 궤멸된 상태에서 최종적으로 강력한 적대세력인 이란의 핵 프로그램과 미사일 시설을 초토화시키는 목표다. 당연히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시위를 가급적 확산시켜 내부 혼란을 극대화하는 시도를 할 것이다. 이란 최고 지도자나 대통령이 내부 민생 시위를 연일 외부 세력의 사주를 받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고 비난을 멈추지 않는 배경이다.
미국이 이란 내정에 군사적으로 개입한다면 적어도 네 가지 시나리오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은 사이버 공격으로 원유시설과 중앙은행 거래를 마비시켜 회생 불능의 경제파탄을 초래하여 정권을 붕괴시키는 작전이다. 이는 현재 이란 원유를 80% 이상 수입하면서 유일한 생명선인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13일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이란과의 거래국가에 25%의 추가관세를 매기겠다는 정책도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보인다. 동시에 일론 머스크와의 협력을 통해 그가 소유한 스타링크 시스템 투입으로 이란 인터넷 시스템을 무력화시키고, 정부 통신망 장악을 시도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둘째는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 핵 시설이나 혁명수비대 민간 군사시설을 정밀 타격하여 위협 요소를 제거하는 작전이다. 다만 미국 군사공격은 자칫 정권 퇴진을 외치는 시위를 약화시키고 오히려 시민들을 반미로 결집시키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셋째는 직접 군사 개입으로 알리 하메네이 최고 지도자 제거와 정권교체를 단행하는 작전이다. 이는 미국과 협력 가능한 이란 내 대안 정치세력이 부재한 상황이고, 레자 팔라비를 최종 선택안으로 하기에는 확신이 서지 않아 고심을 거듭할 것이다.
넷째는 가장 우려하는 선택인데,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군사공격 이후 이란을 스스로 수습불능 상태로 방치하여 아제르, 쿠르드, 루르, 발루치 등 소수종족들의 자치와 독립 요구로 대혼란을 야기하고 당분간 내전 상태로 만들어 이스라엘에 대한 잠재적 위협을 아예 끊어버리는 전략이다.
이란 사태의 바람직한 해결 방안은
막다른 골목에 도달한 이란 경제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 없이는 시위나 소요는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 정부가 핵 프로그램의 원천적인 포기라는 마지막 카드를 던지면서 미국과의 대타협을 통해 경제제재를 푸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최선이다. 반미 투쟁과 핵 주권이라는 선명성을 무기로 체제를 유지해 온 현 하메네이 정권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선택일 것이다. 시위 진압이 실패하고 다른 모든 수단이 작동하지 않게 되면 체제 존속과 정국 안정을 위해 하메네이 하야 카드를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차기 지도자는 기본적인 신정체제 시스템을 유지하면서 여성인권이나 정치참여, 재정 투명성, 서구와의 협력관계 재정립 등에서 보다 개혁적인 유화정책으로 민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거론되는 차기 지도자로는 하메네이의 차남으로 혁명수비대를 관장하는 막후 실력자로 알려진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최고 지도자를 선출하는 전문가회의 부의장으로 정통 신학자 그룹을 대표하는 알리레자 아라피, 그리고 개혁파의 상징으로 떠오른 이란 혁명의 아버지 이맘 호메니이의 손자 하산 호메이니 등이 거명된다.
이란의 안정과 정상화는 유가안정, 호르무즈 해협 안전 확보, 물류 코스트 절감이라는 측면에서 우리 경제에도 매우 절실하다. 이란 사태가 외세 개입 없이 이란 국민들의 현명한 선택으로 새로운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필자 주요 이력
▷한국외대 ▷터키 이스탄불대학 역사학 박사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한국튀르키예친선협회 사무총장 ▷중앙아시아연구원(UNESCO-IICAS) 학술위원(한국대표) ▷성공회대 석좌교수 ▷국내외 저서 90여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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