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석 한국관광학회장 겸 경희대 호텔관광대학장은 최근 동북아 관광 시장의 흐름을 이렇게 진단했다. 관광 산업 경쟁국들은 이제 단순히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광객의 시간을 붙잡고 지출을 끌어낼 수 있는 체류형 인프라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복합리조트(IR)가 자리하고 있다. 지난 15일 경희대학교 호텔관광대학장실 만난 서 회장은 "IR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관광 전쟁은 이미 시작됐다"며 "IR은 관광 산업의 외연을 넓히는 데만 초점이 맞춰진 시설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바꾸는 플랫폼이다. IR을 기반으로 한 관광 산업이 준비된 국가와 그렇지 않은 국가의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집적화'가 만드는 체류형 관광 구조
서 회장이 짚은 IR의 가장 큰 가치는 기능의 '집적화'다. 숙박을 중심으로 미식, 공연, 쇼핑, 엔터테인먼트, MICE 시설이 한 공간에 집결된 덕분에 관광객의 동선이 단순해지고 체류 시간은 자연스럽게 늘어난다. 서 회장은 "관광 트렌드는 이미 여러 명소를 짧게 소비하는 방식에서 벗어났다. 이제 관광객들은 한 공간에서 다양한 경험을 연속적으로 누리는 걸 선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IR이 관광객의 시간 사용 방식을 바꾸는 구조라는 점도 강조했다. 이동에 소요되던 시간이 소비와 경험으로 전환되면서 관광의 질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서 회장은 "관광객은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소비 범위와 규모가 함께 커진다. 즉 IR은 숙박, 미식, 엔터테인먼트 소비를 동시에 창출하는 이상적인 체류형 관광시설"이라고 말했다.
지역 관광 측면에서 볼 때도 IR은 높은 가치를 지닌다. IR을 거점으로 지역 관광 자원과 연계가 이뤄질 경우 관광객들의 소비는 지역 상권까지 확산될 수 있다. 서 회장은 "국가 관광 경쟁력은 개별 시설이 아니라 인프라를 어떻게 조합하느냐에서 나온다"라며 "그중에서도 IR은 도시의 관광 구조 변화를 끌어내고 활성화를 촉진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IR이 체류형 관광 인프라의 핵심으로 거론되는 이유는 서로 다른 기능이 결합된 산업 구조에 있다. 이 가운데 안정적인 수익 창출을 담당하는 장치가 바로 카지노다. IR이 장기적으로 운영되고, 비게임(non-gaming) 시설에 대한 투자가 지속되기 위해선 카지노를 통한 수익 구조가 동반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서 회장은 카지노를 부가 시설이 아닌 IR 전체를 떠받치는 수익 구조의 중심축으로 바라봤다. 카지노가 단순한 오락 공간이 아니라 IR의 운영과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재원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카지노를 빼놓고 IR 내 대규모 관광 인프라를 갖추긴 어렵다. 카지노 수익이 없다면 비게 시설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도 쉽지 않다. 그래서 IR과 카지노의 시너지는 경제적 파급효과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했다.
대형 공연장이나 엔터테인먼트 콘텐츠는 초기 투자비와 운영비 부담이 크지만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이러한 시설이 유지·확장될 수 있는 배경에는 카지노 수익이 있다는 것. 서 회장은 "카지노에서 발생한 수익이 비게임 시설로 재투자되며 IR 내 대규모 관광 인프라 운영을 뒷받침하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며 "카지노를 배제한 IR 모델은 규모와 지속성 측면에서 국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짚었다.
특히 내국인과 외국인 모두 출입할 수 있는 '오픈 카지노'를 둘러싼 논의 역시 감정적 논쟁에서 벗어나 수익 구조의 관점에서 차분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카지노를 여전히 '도박장'으로만 바라보는 시각에 머무를 경우, 카지노로 작동하는 산업 구조와 경제적 기능을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 교수는 "오픈 카지노는 어떤 방식으로 관리하고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가 핵심이다. 허용과 금지의 이분법적 접근보다는 제도권 안에서 관리·감독하는 체계를 먼저 갖추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지"라면서 "통제되지 않은 시장을 방치하는 것보다 명확한 규칙과 책임 구조를 통해 운영하는 편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카지노를 둘러싼 논의 역시 산업 구조와 제도 설계의 관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회장은 향후 한국 관광 산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이슈로 2030년 개장이 확정된 일본 오사카 IR을 꼽았다. 그는 "한국 관광 산업에 매우 큰 위협"이라며 "한국과 일본은 글로벌 관광객을 놓고 이미 치열한 관광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로선 오사카 IR이 들어설 경우 인프라 측면에서 한국이 대응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고 지적했다.
오사카 IR은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선택한 관광 전략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서 회장은 "일본은 지난해 4∼10월 열린 오사카·간사이 만국박람회(오사카 엑스포)를 통해 전 세계에 오사카를 알렸다. 여기에 IR까지 지으면서 관광과 MICE 수요를 동시에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이는 개별 시설 간 경쟁을 넘어 동북아 관광 수요의 흐름 자체를 바꾸려는 시도로 봐야 한다"고 분석했다.
오사카는 이미 풍부한 관광 수요와 뛰어난 글로벌 접근성을 갖춘 도시다. 여기에 IR이 더해질 경우 국제회의와 글로벌 이벤트, 고부가가치 관광 수요까지 일본으로 이동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서 회장은 "동북아 관광 경쟁은 도시 간 경쟁을 넘어 국가 전략 간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인프라와 정책 준비가 늦은 국가는 자연스럽게 관광객 수요를 빼앗길 수밖에 없다"고 내다봤다.
서 회장은 오사카 IR이 한국 관광 산업에 던지는 메시지를 '경고'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관광 수요는 결국 준비된 쪽으로 이동한다"며 "오사카 IR은 국가적으로 한국 관광이 안주할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뼈아픈 사례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결단은 필수...관건은 시간
서 회장은 IR을 한국 관광의 다음 단계를 가늠하는 핵심 인프라로 보고 있다. 그는 "관광객 수 확대에 머물 것인지 체류형 고부가가치 관광으로 전환할 것인지는 IR 관련 국가 정책에서 분명히 드러날 것"이라며 "IR 내 카지노도 마찬가지다. 카지노를 관광 산업으로 보고 국가적 경쟁력을 갖춘 콘텐츠로 키울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특히 관광 정책에서 '시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IR과 같은 대규모 인프라는 계획부터 운영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 회장은 "관광 정책은 사후 대응이 아니라 선제 전략이어야 한다"며 "경쟁국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한 상황에서 논의만 이어간다면 격차는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동북아 관광 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단기 성과보다 중장기 전략에 무게를 둔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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