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쿠팡 사태, 방대한 자료와 로비가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쿠팡의 해롤드 로저스 한국법인 임시 대표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연방 하원 법사위원회에 출석해 약 7시간 동안 비공개 증언을 했다. 이 과정에서 쿠팡은 한국 정부와 국회, 사법·행정기관과 주고받은 수천 쪽 분량의 문서와 통신 기록, 영상 자료까지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환장에 따른 방대한 자료 제출과 장시간 증언은 이번 조사가 단순한 참고 청취가 아니라, 제도·입법 검토까지 염두에 둔 본격 조사임을 보여준다. 

반면 국내에서는 지난해 12월 국회 청문회가 핵심 책임자의 불출석과 정쟁 속에 마무리됐고, 개인정보 유출·증거 인멸·위증 의혹 등 주요 쟁점에 대한 실질적 규명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동일한 사안을 두고 한국과 미국에서 전혀 다른 대응 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이 차이는 우연이 아니다. 

미 하원 법사위는 쿠팡에 대해 지난 6년간 한국 정부 기관과 주고받은 모든 기록을 요구했고, 공정거래위원회와 경찰, 국회, 대통령실과의 소통 내역까지 포괄적으로 제출받았다. 쿠팡은 이에 맞춰 대규모 자료를 제출하며 ‘차별적 규제’ 프레임에 대응하는 데 주력해 왔다. 

동시에 쿠팡의 미국 투자사들은 미 무역대표부(USTR)에 무역법 301조 조사를 청원했고, 미 의회는 이를 토대로 공개 청문회와 입법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있다. 미 연방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 이후 트럼프 행정부가 122조·301조 등 우회 수단을 검토하는 상황에서, 쿠팡 사안이 통상 카드로 활용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는 2월 8일자 기사에서 쿠팡이 지난 수년간 워싱턴에서 ‘전방위 로비 전략’을 펼쳐 왔다고 전했다. 전직 트럼프 행정부 인사 영입, 복수의 로비 회사 계약, 정치 후원 확대 등을 통해 디지털 차별 이슈를 집중 부각시켜 왔다는 지적이다. 개인정보 유출 이후 이러한 활동이 더욱 강화됐다는 점도 함께 언급됐다.  

이는 쿠팡이 현재의 법적·규제 리스크를 국내 문제로 한정하지 않고, 미국 정치·통상 체계 안으로 이전시키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기업 입장에서 방어 전략일 수는 있으나, 그 파급 효과는 개별 기업 차원을 넘어선다. 

방대한 자료 제출과 장시간 증언, 조직적인 로비 활동이 국내에서 제기된 의혹을 소멸시키지는 않는다. 개인정보 유출 규모 축소 논란, 증거 인멸 의혹, 국회 위증 문제, 산업재해 은폐 의혹 등은 여전히 수사 대상이다. 이러한 사안은 워싱턴의 정치 논리로 해소될 수 없다. 

동시에 정부와 국회 역시 돌아봐야 할 지점이 분명하다. 

국내 수사가 정당하다면, 그 정당성은 절차와 비례성, 일관성으로 입증돼야 한다. 일부 정치권의 과도한 발언이나 감정적 공방, 보여주기식 청문회는 오히려 ‘차별적 집행’이라는 외부 프레임에 힘을 실어주는 결과를 낳는다. 

지난 국회 청문회 역시 데이터 보호 체계 개선과 피해 구제, 제도 보완보다 출석 공방과 책임 추궁에 집중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도적 감독 역량을 강화하기보다 정치적 소모전에 가까웠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쿠팡 사태는 세 가지 요소가 결합된 구조적 문제다.  기업의 내부 통제 실패, 정부·국회의 감독 한계, 그리고 글로벌 로비와 통상의 결합이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이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  기업은 로비로 책임을 대신할 수 없고, 정부는 외교 부담을 이유로 법 집행을 흔들어서도 안 되며, 국회는 감정이 아닌 제도로 대응해야 한다.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왼쪽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하원 법사위에서 비공개 증언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2026223
해롤드 로저스 쿠팡 한국법인 임시 대표(왼쪽)가 23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연방 하원 법사위에서 비공개 증언을 마친 뒤 나오고 있다. 2026.2.23 (연합뉴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컴패션_PC
댓글0
0 / 300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