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월 말 기준으로 지방선거 투표권을 가진 외국인이 14만명을 넘어서는 등 지방참정권을 갖는 외국인이 계속 늘어남에따라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할 때 상호주의를 도입하여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어 왔다. 올해 6월 초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시행될 예정이어서 특히 야권에서 현행 외국인 참정권 제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애초 외국인 참정권 논의의 배경에는 1990년대에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재일 한국-조선인의 참정권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선제적으로 이를 한국 거주 외국인에게 적용하는 것이 유리하겠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리하여 2005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되면서 영주권 자격 취득 후 3년이 지난 18세 이상 외국인에게 지방선거 참정권이 주어졌다. 이러한 조치를 하면서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가 재일 한국인-조선인에 대해 ‘지방선거 투표권’을 부여할 것을 기대했으나, 일본은 여전히 그들에 대해 참정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시아에서 외국인의 참정권을 인정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며 미국 및 유럽 국가들과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도 극히 제한적으로 허용되고 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논란은 왜 일본 정부가 상응하는 조치를 하고 있지 않느냐에 관한 것이 아니고 중국 국적 영주권자에 지방참정권을 허용하는 것에 대한 것이다. 현행 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쪽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현행법은 지방참정권 부여에 만만치 않은 조건을 붙이고 있다. 둘째, 외국인 영주권자들은 2022년 지방선거(13.3%)에서 보듯이 투표율이 낮으며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어 개별 선거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기 어렵다. 따라서 굳이 현행 제도를 바꿀 필요가 없고, 폐지하게 되면 아시아 최초로 이 제도를 도입하면서 고양된 한국의 이미지만 훼손시킬 수 있다. 셋째, 상호주의를 적용하게 되면 중국 국적의 영주권자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 출신의 영주권자에게 적용해야 하는데 현재 자국에 거주하는 한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허용하는 나라가 거의 없어 사실상 외국인 지방참정권 제도가 폐지되는 결과를 낳게 된다.
문제의 핵심은 외국인 참정권 제도 자체라기보다는 국내 거주 외국인 중 중국 국적자의 비중이 매우 크고 따라서 외국인 선거권자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다는 점이다. 2021년 서울시장 선거 때 더불어민주당이 중국 국적 영주권자들에게 투표를 독려한 것은 그들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추어 부적절하였다. 상식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단순히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독려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미국처럼 이민자들의 출신이 매우 다양한 경우에는 크게 문제 될 것이 없겠으나 한국처럼 어느 한 나라 출신 참정권자의 비중이 매우 높으면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중국은 물론 자국 내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을 주지 않고 있다. 그런데 2022년 11월 한국 법무부가 ‘국가 간 상호주의 원칙에 따라 한국에서 거주하는 외국인 영주권자에 대한 지방선거 투표권을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발표하자마자 주한 중국대사는 바로 법무부 장관에게 요청하여 면담했다. 당시 싱하이밍 중국 대사의 이와 같은 행동은 국가 간 관계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외교 관례상 주재국에 대해 어떤 항의나 우려를 표시할 때 외교부 관계자를 통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바로 주무 부처 장관을 만나는 것은 부적절한 행동으로 이해된다. 더욱이 대사가 직접 나서는 것은 사안이 중차대하거나 화급한 경우에 국한된다. 평소 주한 중국 대사관이 한국 내 자국민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를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한국 출입국 당국이 여권을 갖고 있지 않았지만 누가 보아도 중국인인 불법체류자를 검거하고 나서 중국 대사관 영사과에 연락하여 와서 자국민을 챙기라고 하였더니 와보지도 않고 그 불법체류자가 중국인임을 입증하라고 요구하였다고 한다. 주한 중국 대사관의 자국민에 대한 태도가 이럴진대 영주권을 가진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허용하는 것은 국제법상 의무가 아니라 일방적인 시혜임에도 중국 대사가 무슨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행동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중국 대사의 행동은 개인의 성격 탓으로 돌리기는 어렵고 본국 정부의 지시에 따른 행동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중국 국적 영주권자들의 참정권에 관한 일부 부정적 여론을 무작정 음모론이라고 매도하기도 어렵다.
일부에서 주장하듯이 의무 실거주에 대한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에 영주권 취득 이후 국내에 거주하지 않으면서 선거 때만 입국하여 선거권을 행사하는 이른바 ‘원정투표’가 가능한데 이는 명백히 제도의 취지에 어긋난다. 현재 국회에는 외국인의 지방참정권 관련 공직선거법 일부개정 법률안 2건이 계류되어 있다. 거주요건을 ‘영주권 취득 후 국내 체류 기간이 10년 이상’ 또는 ‘ 영주권 취득 후 국내 체류 기간이 5년 이상 및 선거인명부 작성일 기준 4년 동안 730일 이상 국내에 체류’로 강화하였고, 상호주의를 규정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거주요건의 강화만으로도 충분히 개정 취지를 살릴 수 있으며, 상호주의까지 규정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상당수 국민들이 현행 제도에 대해 나름 합리적인 우려를 하고 있다면 정부가 적극적으로 그것을 해소하는 것이 맞다. 더욱이 어느 선거든지 단 한 표 차이로도 당락이 좌우될 수 있으므로 민심이 왜곡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여야 할 것이다. 공직선거법 개정을 놓고 진지한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대 법학과 ▷영국 옥스퍼드대 외교관 연수과정 수료 ▷주우즈베키스탄 공사 ▷ 주이르쿠츠크 총영사 ▷주러시아 공사 ▷상명대 글로벌지역학부 초빙교수 ▷현 유라시아전략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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