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완의 월드비전] 안보 위기와 진보정치에 대한 피로감 …태국 민심이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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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8월 해외 망명 15년 만에 귀국한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왼쪽)가 딸 패통탄과 수도 방콕 공항에서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방콕=AP 뉴시스]



태국 현대 정치를 관통하는 이름은 단연 탁신 친나왓(76)이다. 그는 부유한 화교 가문 출신으로 1949년 치앙마이에서 태어나 경찰 간부로 재직하다 1980년대 후반 통신 사업을 기반으로 거대한 부를 쌓았고,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로 경제난이 심각해지자 이를 정치적 기회로 삼았다. 기존 정치권이 소홀히 했던 농민과 빈민층을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 올리고 2001년 선거에서 승리하며 총리에 올랐다.      

탁신의 등장과 함께 태국 역사는 왕실과 군부 그리고 방콕과 남부 지역 중산층이 포함된 기득권층과 경제 성장의 그늘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농민과 소외 계층의 대립이 고착화되었다. 무상 의료 서비스, 농가 채무 탕감 등 그의 노골적인 '포퓰리즘' 정책에 저소득층은 열광했다. 탁신 집권 기간 외환위기 후유증에 시달리던 태국 경제는 회복세로 돌아섰다. 연평균 5%를 넘는 경제성장에 힘입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도 예정보다 2년 빠른 2003년 조기 상환했다. 이를 앞세워 탁신은 2005년 총선에서 하원 전체 500석 중 75%인 377석을 쓸어 담았다.

1932년 입헌군주제 수립 후 19번이나 쿠데타가 발생할 정도로 정정 불안이 잦은 태국에서 4년 임기를 무사히 마친 총리, 선거라는 민주주의 방식으로 재선에 성공한 총리 또한 탁신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국민을 분노케 한 대형 스캔들이 탁신 정권의 운명을 몰락의 길로 내몰았다.   

2006년 1월 탁신의 가족은 태국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친코퍼레이션’ 지분 49%를 싱가포르 국부펀드 테마섹에 매각해 19억 달러에 이르는 이익을 챙겼다.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음에도 두 아들 명의의 해외 페이퍼 컴퍼니를 이용해 세금을 단 한 푼도 내지 않은 사실이 알려지자 민심은 등을 돌렸다. 시위가 계속되자 탁신은 의회를 강제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실시해 국민의 재신임을 얻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2006년 4월  조기 총선에서 승리를 거둔 탁신은 총리 복귀를 노렸으나 헌법재판소는 다수당의 폭거라며 선거 무효 판결을 내렸다. 그가 대표로 있던 ‘타이락타이당(태국을 사랑하는 당)도 선거법 위반 혐의로 해산 명령을 받았다. 헌재 판결 직후 9월 탁신은 유엔 총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머무는 사이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실각했다.  

쿠데타 후 해외를 떠돌던 탁신은 자신이 내세운 정당이 집권하자 2008년 2월 잠시 귀국했다. 왕실과 군부 등 지배 엘리트 계층을 옹호하는 세력인 엘로셔츠가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탁신은 같은 해 8월 부패 혐의 재판을 앞두고 다시 출국해 영국,  아랍에미리트(UAE), 홍콩, 싱가포르 등에서 사실상 망명생활에 들어간다. 해외 생활 내내 탁신은 막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는 2023년 8월 탁신 세력의 프아타이당(Pheu Thai Party)의 집권이 유력해지자 사면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고 15년의 망명 생활을 접고 귀국을 단행했다. 귀국 직후 탁신은 법원에서 직권남용 등 혐의로 8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왕실의 사면으로 형량이 1년으로 감축됐다. 그는 곧바로 경찰병원으로 옮겨져 6개월간 지낸 뒤 사면을 받고 가석방돼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9월 탁신은 2023년 귀국 후 병원에서 보낸 6개월이 형기로 인정되지 않는다는 대법원 결정으로 1년 실형을 선고받고 재수감됐다. 그에 대한 왕실 모독 혐의 재판 또한 끝나지 않았다. 현재 수감 중인 탁신은 1년 형기 중 3분의 2, 즉 8개월을 복역하면 가석방 신청 조건을 충족한다. 이르면 오는 5월 가석방될 수 있다. 

탁신과 연관된 정당들은 2001년 이후 대부분 선거에서 승리했다고 할 정도로 거대하고 충성도 높은 지지층을 이끌었다. 정치 평론가들은 탁신을 지난 사반세기 태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논란의 정치인으로 꼽는다. 재임 중 경제 회복과 서민을 위한 복지정책 확장이라는 성과를 남겼지만 그에게는 부패한 포퓰리스트(대중영합주의자)라는 비판도 따라 다닌다. 

지난 2월 8일 총선에서 탁신계인 프아타이당이 참패해 그의 정치 왕조가 쇠퇴의 길을 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의 가문은 21세기 들어 네 차례나 총리를 배출했다. 탁신에 이어 2008년 매제 솜차이 윙사왓, 2011년엔 여동생인 잉락 친나왓, 2024년에는 딸인 패통탄 친나왓이 총리에 올랐다.  각자 헌재 판결이나 군부 쿠데타에 의해 실각해 온전히 임기를 채우지 못했지만 한 가문에서 총리를 4명이나 배출한 것은 유례가 극히 드문 일이다. 탁신은 가족이 집권할 당시 막후에서 사실상 대리 통치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헌법재판소와 법원은  군부와 함께 반탁신 세력의 중심이었다. 태국 헌법은 ‘군주를 국가원수로 하는 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거나 ‘헌법이 인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권력을 취득’할 경우 정당 해산을 허용한다. 사법부는 이를 근거로 탁신 세력의 집권을 지속적으로 막아왔다.

탁신의 여동생 잉락은 2011년 태국 최초의 여성 총리로 부임했으나 2014년 헌재가 인사권을 남용했다는 이유로 해임을 선고했고 직후 군부는 쿠데타를 일으켰다. 지난 해 5월 딸인 패통탄 당시 총리는 태국-캄보디아 국경 분쟁 당시 훈 센 전 캄보디아 총리와 통화하면서 태국 사령관을 비하한 발언이 유출되면서 태국 국민의 분노를 샀다.  3개월 후 패통탄은 헌재의 국가기밀 유출 판결로 총리직을 상실했다. 

지난해 9월 5일 태국 하원은 패통탄 후임으로 왕실 지지 성향인 보수 정당 품짜이타이당(Bhumjaithai Party) 대표인 아누틴 찬위라꾼을 제32대 총리로 선출했다. 이때 강경진보 성향인 국민당(People's Party)은 수개월 내 조기 총선을 실시하자는 조건으로 제3당 당수이던 아누틴의 총리 선출을 지지했다. 이는 곧 국민당의 전략적 오판으로 귀결되었다. 

2·8 태국 총선은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소수파 총리로 불신임 위기에 몰렸던 아누틴 찬위라꾼(59)이 이끄는 품짜이타이당이 하원 전체 500석 중 193석을 석권하며 제1당 자리를 차지했다. 선거 전만 해도 강경진보 성향인 국민당이 우세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뚜껑을 열어본 결과 국민당은 118석에 그쳤다. 탁신 일가가 내세운 프아타이당은 자신들 텃밭인 치앙마이에서 단 한 석도 차지하지 못했다. 겨우 74석을 얻으며 원내 제3당으로 전락한 프아타이당의 참패와 품짜이타이당의 부상은 민심이 ‘개혁’보다 ‘안정’을 택했음을 시사한다.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아누틴 찬위라꾼 태국 총리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이번 선거에서 단독 과반에는 미치지 못한 아누틴 찬위라꾼 총리의 품짜이타이당은 프아타이당 및 군소정당들과 연립정부를 구성해 안정적인 의석을 확보할 것으로 보인다. 야누틴은 20년만에 선거를 통해 재집권에 성공한 총리라는 기록을 남기게 될 전망이다. 아누틴 총리는 자수성가한 재벌 출신으로 왕실을 보위하는 군부와 사이가 좋고 특정 이념에 얽매이지 않는 기술관료를 전면에 내세우는 실용주의적 정치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한때 탁신이 만들었던 타이락타이당에 몸담았지만 탁신의 지나친 포퓰리즘, 반왕실 노선에 불만을 품고 분당을 택한 인사이다. 

입헌군주국인 태국의 정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단순하지 않고 독특하다. 태국 정치의 중심에는 항상 군부와 왕실이 자리하고 있다. 왕실의 상징적 권한은 절대적이고 군부 쿠데타 등으로 정국이 불안할 때마다 시국 안정을 위해 영향력을 유감없이 행사하기도 한다. 군부는 단순한 무력기관이 아니라 왕을 보위하고 정치의 '조정자' 역할을 해왔다. 2017년 개정한 헌법에 따라 군부가 임명한 상원 250명이 총리 선출에 참여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군부 협조 없이 정권을 잡기 힘든 구조이다. 대부분이 불교도인 국민들은 민주주의나 정당 정치보다는 질서 유지와 왕실 보호를 우선 가치로 작동하는 사회적 합의를 지니고 있다.     

외신들은 이번 선거의 승패를 가른 결정적 요인으로 지난해 말부터 고조된 캄보디아와의 국경 분쟁과 안보 불안을 꼽고 있다. 안보 위기 상황에서 국민들은 '개혁'보다는 '안정'을 우선했다. 아누틴은 선거운동 기간 국왕에 대한 충성, 국민들의 영토 주권 수호, 민족주의를 자극하여 보수층과 왕당파를 결집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태국과 캄보디아는 1907년 프랑스가 캄보디아를 식민지로 통치하면서 처음 측량한 817㎞ 길이의 국경선 가운데 경계가 확정되지 않은 지점에서 100년 넘게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다. 양국은 지난해 7월 28명이 숨진 무력 충돌을 벌였고 같은 해 12월에도 3주 가까운 교전으로 100여 명이 사망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또 하나의 특징은 진보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다. 국민당은 징병제 폐지, 군 장성 감축 등 개혁 공약을 내세웠지만 국민의 지지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프아타이당은 탁신 조카인 욧차난 웡사왓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다. 이미 총리를 네 명이나 배출한 탁신 일가가 친·인척을 당의 얼굴로 내세운 것 또한 이번 총선의 패착으로 꼽힌다. 

그러나 제1당인 품짜이타이당이 프아타이당과의 연정을 가시화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탁신의 존재감은 여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태국의 민심이 '개혁의 시대'에서 '안정의 시대'로 이동하는 변곡점으로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아누틴에게 탁신계 프아타이당은 의회 안정성을 제공하는 파트너이자 갈등을 제도권 안으로 흡수하는 장치다. 

반면 프아타이에게 아누틴은 생존의 통로다. 선거 패배로 활력을 잃은 야당으로 버티기보다 연정 참여로 영향력을 유지하고 가문의 사법 리스크를 관리하며 다시 한번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 기득권에 반기를 들며 포퓰리즘 정책으로 농민과 서민층의 인기를 얻었던 탁신은 스스로 또 다른 기득권의 길을 가고 있다. 그 과정에서 탁신 가문의 정체성은 모호해지고 있다. 과연 프아타이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이수완 필자 주요 이력 

▷코리아타임스 기자 ▷로이터통신 선임특파원 ▷로이터통신 편집장 ▷서울외신기자클럽 회장 ▷아주경제 글로벌본부장 ▷아주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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