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대통령이 내려온 자리 — 열 번의 타운홀 미팅이 남긴 국가의 질문

정치는 결국 ‘거리’의 문제다. 권력과 국민 사이의 거리다. 대통령의 자리는 높다. 높은 자리에서 국가를 내려다보는 일은 통치 구조상 불가피하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성숙할수록 그 거리는 다시 좁혀져야 한다. 권력이 스스로 낮아질 때 시민의 목소리는 비로소 국가의 언어가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이후 전국을 돌며 진행한 10차례의 타운홀 미팅은 그런 점에서 상징적이다. 단순한 현장 방문이 아니라 권력이 국민의 자리로 내려오는 정치적 실험이기 때문이다.

27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북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들며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7일 전북 전주시 전북대학교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전북의 마음을 듣다' 타운홀미팅 간담회에서 참석자들이 손을 들며 발언권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타운홀 미팅은 미국 정치의 오래된 전통이다. 1992년 대선에서 빌 클린턴은 유권자와의 타운홀 토론에서 “당신의 고통을 느낀다”는 말로 공감의 정치를 상징화했다. 버락 오바마 역시 건강보험 개혁과 금융위기 대응 과정에서 수십 차례 지역 타운홀을 열어 시민의 질문에 직접 답했다. 권력의 설득은 연설이 아니라 대화에서 완성된다는 점을 보여준 사례들이다.


유럽도 다르지 않다. 독일은 통일 이후 동서 격차 해소를 국가 전략으로 설정하고 ‘연대세(Solidaritätszuschlag)’를 통해 막대한 재원을 투입했다. 프랑스는 파리 집중을 완화하기 위해 공공기관과 연구기관을 지방으로 이전했다. 일본 역시 도쿄 일극 집중의 한계를 인정하고 지방 창생 전략을 국가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선진국일수록 지역 불균형을 방치하지 않는다. 균형은 복지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지속 가능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10차례 타운홀 미팅은 한국 사회가 직면한 바로 그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다. 광주에서 시작해 대전, 부산, 강원, 대구, 경기 북부, 충남, 울산, 경남, 그리고 전북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대화의 핵심은 결국 하나였다. 수도권 집중과 지역 격차다.


대한민국은 압축 성장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 성장의 공간 구조는 극단적으로 편중돼 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고, 경제·교육·문화·의료·일자리 인프라 역시 서울을 중심으로 집중돼 있다. 산업화 초기에는 이러한 집중 전략이 효율적이었다. 한정된 자원을 모아 빠른 성과를 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수도권은 과밀로 인한 주거난과 교통난, 환경 부담에 시달리고 있고 지방은 인구 감소와 산업 공동화로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청년은 떠나고 지역은 빠르게 고령화된다.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지방 소멸은 현실이 되고 결국 국가 전체의 성장 동력도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이 “균형발전은 시혜적인 배려가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라고 강조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구 감소 시대에 특정 지역만 번영하는 구조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지역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균형은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전략의 문제다.


특히 전북에서 열린 열 번째 타운홀 미팅은 상징적이었다. 이 대통령은 전북도민이 느끼는 ‘삼중 소외’를 언급했다. 수도권 집중 속에서 지방이 소외되고, 영남 중심 산업 구조 속에서 호남이 뒤처졌으며 그 안에서도 전북이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인식이다. 그는 “근거 없는 말이 아니다”라고 했다. 정치 지도자가 지역의 감정을 인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현실을 인정하지 않는 전략은 공허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MOU 서명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27일 전북 군산새만금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새만금 로봇·수소·AI 시티 투자협약식에서 MOU 서명식이 끝난 뒤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새만금 사업에 대한 문제 제기도 같은 맥락이다. 30년 넘게 추진된 사업이 여전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다면 속도보다 효율을 묻는 것이 책임 있는 태도다. 매립을 계속할 것인지, 산업 구조를 전환할 것인지, 막대한 비용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같은 날 체결된 로봇·AI·수소 산업 투자 협약은 단순한 지역 이벤트가 아니라 미래 산업 지도를 바꾸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된다. 타운홀은 질문의 형식이고 정책은 실행의 구조다. 열 번의 대화가 열 개의 사업으로 끝난다면 그것은 행사에 그칠 뿐이다. 균형발전은 산업 정책과 재정 구조 개편, 교육 분산, 공공기관 이전, 규제 혁신이 함께 움직여야 가능한 장기 전략이다. 독일이 30년을 투자했듯 일본이 구조 전환을 시도하고 있듯 한국 역시 일관된 시간의 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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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트북LM]


전북 타운홀에서 이 대통령은 동학혁명을 언급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은 단순한 역사 인용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의 정당성이 어디에서 오는가를 묻는 선언이다. 민주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태도다. 국민을 통치의 대상이 아니라 주체로 인정할 때 비로소 살아 움직인다.


대통령의 자리는 여전히 높다. 그러나 그 자리가 시민의 자리와 연결될 때 권력은 민주주의가 된다. 전국을 돌며 열린 열 번의 타운홀 미팅은 그 연결을 시험하는 과정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하나다.


대화가 구조가 되고, 구조가 결과가 되는 일이다.

균형발전은 배려가 아니다. 생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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