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상 칼럼] 백범선생이 남긴 반지, 그리고 '문화의 힘'

3·1절은 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던 나라에 얼마나 가까이 와 있는가.
 

올해 3·1절을 앞두고 상징적인 유물이 하나 공개됐다. 백범 김구 선생이 한국광복군 대원들에게 나눠줬다는 ‘광복군 반지’다. 광복군 출신 고(故) 송창석 독립지사의 유품으로, 아들 송진원 씨가 민족문제연구소에 대여 형식으로 맡기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졌다.


반지는 무궁화와 별 문양이 새겨진 작은 금속 반지다. 번개 모양의 표식은 당시 무전반을 의미한다. 반지 안쪽에는 ‘한광무전반’이라는 한문 표식이 남아 있다. 기록에 따르면 이 반지는 1945년 중국 시안에서 OSS 특수훈련을 받던 한국광복군 무전반 대원들에게 전달된 것으로 전해진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직전 국내 진입 작전을 앞둔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사비를 털어 나눠줬다는 반지가 3·1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됐다사진연합뉴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직전, 국내 진입 작전을 앞둔 한국광복군 대원들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사비를 털어 나눠줬다는 반지가 3·1절을 맞아 처음으로 공개됐다.[사진=연합뉴스]


이 반지에 얽힌 이야기는 광복 직전의 긴박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1945년 여름, 일본 제국의 패색은 이미 짙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국의 해방은 아직 확정된 일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미국 전략정보국 OSS와 함께 국내 진입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른바 ‘독수리 작전’이다. 한국광복군 대원들은 특수훈련을 받고 조국 땅으로 잠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중국 시안을 찾은 김구 선생이 훈련생들을 격려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조국 땅으로 죽으러 가는 이들이니 기념품을 주고 싶다.”


이에 선임 광복군이 반지를 제안했고, 김구 선생과 지청천 총사령관 등 임시정부 지도부가 사비를 모아 반지를 마련했다. 모두 44명에게 전달된 ‘훈련 수료 반지’였다.

송창석 지사가 생전에 남긴 기록에는 또 하나의 말이 전해진다. 김구 선생은 반지를 건네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반지가 군번이 될 수 있다. 조국 땅에서 죽으면 신원 확인용으로 쓰일 것이다.”


이 말은 당시 광복군이 어떤 각오로 훈련을 받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해방을 보장받은 군인이 아니었다. 언제 돌아오지 못할지 모르는 작전에 투입될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 반지는 기념품이 아니라 결의였다.


물론 이 반지의 역사적 진위는 앞으로 더 많은 고증이 필요하다. 백범일지 등 공식 기록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당시 시안에서 OSS 훈련이 진행됐고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지도부가 훈련생들을 격려했다는 사실은 역사적으로 확인된다. 반지의 존재 역시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의미는 반지의 진위 여부를 넘어선다.
그 반지가 상징하는 마음 때문이다.
 

백범 김구는 평생을 독립운동에 바친 지도자였다. 그는 무력 투쟁과 외교 활동을 병행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켜냈다. 망명 생활은 길고 험난했다. 그러나 그의 글과 연설에는 늘 독립 이후의 나라에 대한 고민이 담겨 있었다.
 

백범 김구선생사진연합뉴스
백범 김구선생[사진=연합뉴스]

그는 독립을 단순히 국권 회복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독립 이후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인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글에는 유난히 ‘문화’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백범일지에 남은 한 문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에게 회자된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이 꿈꾸던 나라는 군사 강국이 아니었다.
문화 강국이었다.

이 문장은 21세기 한국에서 놀라운 방식으로 다시 살아났다.

BTS의 리더 RM은 과거 한 시상식에서 이 문장을 인용했다. 그는 “문화는 그 어떤 물리적인 힘보다 경계를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형의 힘”이라고 말했다.

백범의 문장이 80년의 시간을 넘어 세계적인 음악 무대에서 다시 울린 순간이었다.


오늘의 한국은 백범이 직접 보지 못한 나라가 됐다.
경제 규모는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고, 한국의 문화 콘텐츠는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K팝 공연장에는 세계 각국의 젊은이들이 모이고, 한국 드라마와 영화는 수십 개 언어로 번역돼 시청된다. 한국 음식과 패션, 라이프스타일은 새로운 문화 코드가 됐다.


우리는 군사력으로 세계를 움직인 것이 아니다.
문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래픽노트북LM
[그래픽=노트북LM]


백범이 말했던 ‘문화의 힘’이 현실이 된 셈이다.

물론 우리는 아직 완성된 문화국가라고 말하기 어렵다. 문화 산업의 구조, 예술 환경, 창작 생태계 등 해결해야 할 과제도 많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문화는 이제 한국의 가장 강력한 힘 가운데 하나가 됐다.

1945년, 광복군 청년들은 조국을 위해 목숨을 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손가락에는 작은 반지 하나가 있었다. 그 반지는 군번이 될 수도 있었고, 신원 확인용 표식이 될 수도 있었다.

그 반지에 담긴 각오는 분명했다.


조국을 되찾겠다는 의지였다.

8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나라를 지키고 있다. 문화와 창작, 예술과 산업을 통해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총과 칼 대신 음악과 이야기, 이미지와 콘텐츠가 국경을 넘어 사람들을 움직이고 있다.


백범이 꿈꾸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됐다고 말하기는 아직 이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가 말했던 ‘문화의 힘’은 지금 이 나라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3·1절은 과거를 기리는 날이지만 동시에 미래를 생각하는 날이기도 하다. 독립운동가들이 꿈꾸던 나라는 단지 정치적으로 독립한 나라가 아니라, 스스로의 문화를 통해 세계와 당당히 만나는 나라였다.


백범이 남긴 작은 반지 하나가 우리에게 묻고 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나라를 만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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