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정세 불안으로 전기요금 정상화가 더욱 멀어지고 있다. 국제 유가와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다시 요동치는 데다 환율 변동성까지 확대되면서 요금 조정 여건이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전력공사가 지난해 사상 최대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이를 곧바로 요금 인하로 연결 짓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연료비와 환율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고 있는 만큼 수익 구조가 언제든 흔들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여건 속에서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흑자에 가려진 '에너지 안보' 경고등···중동발 리스크에 제2의 역마진 우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전은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 97조4345억원, 영업이익 13조524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1.7% 증가해 창사 이래 최대 규모다. 2021년부터 3년간 대규모 적자를 냈던 한전은 2024년(8조3647억원) 4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해 흑자 폭을 더 키웠다.
문제는 이 같은 수익이 한전의 천문학적 부채를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지난해 말 기준 한전 부채는 205조7000억원에 달한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등했던 2021~2023년 당시 원가 이하로 전력을 공급한 '역마진'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기간 누적 적자는 47조8000억원에 이른다.
재무 부담이 여전한 상황에서 새로운 변수까지 등장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이후 분쟁이 중동 전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국제 유가와 LNG 가격이 다시 요동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 특성상 환율 상승은 곧 원료비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환율 변수도 부담이다.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를 때마다 한전은 연간 2000억원 정도 환차손을 떠안는 것으로 추산된다. 당초 재무계획에서 반영한 환율(1347원)을 크게 웃도는 고환율이 지속되면 올해 추가 손실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날 야간 거래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한때 심리적 지지선인 1500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산업계로 번지는 부담···"원전 확대 등 현실적 대안 찾아야"
결국 부담은 산업계로 전이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2년간 주택용·일반용 전기요금이 동결되는 동안 산업용 전기요금은 2022년 이후 7차례 인상됐다. 이전과 비교하면 약 70% 오른 수준이다.
생산원가에서 전기요금 비중이 큰 반도체와 철강, 석유화학, 디스플레이 등 업종은 수익성 악화라는 직격탄을 피하기 어렵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수요 확대에 따라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업계, 중국발 공급과잉에 시달리는 석유화학·철강 업계 부담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유가 상승분을 제품 가격에 충분히 반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전력비 부담까지 더해진다면 업황 회복은 더욱 지연될 수밖에 없다.
에너지 안보 환경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이를 요금에 반영할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연료비 변동을 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지만 물가 안정을 이유로 ㎾h당 ±5원인 제한폭이 사실상 고정돼 있는 상태다. 연료비 하락 요인이 발생하면 요금 인하로 이어져야 하지만 연료비 조정단가는 2022년 3분기부터 현재까지 15개 분기 연속 상한선(㎾h당 5원)에 묶여 있다.
요금 결정 구조 역시 정치·물가 변수에 영향을 크게 받는다. 독립기구인 전기위원회가 존재하지만 실제 요금 결정 과정에서는 물가와 정책 판단이 우선시되는 구조다. 독립 규제 기구가 원가주의에 따라 요금을 결정하는 미국·일본 등 체계와 대비되는 대목이다.
문주현 단국대 에너지공학과 교수는 "산업용 전기요금은 국가 경쟁력과 직결된 사안인 만큼 재원 마련 방안과 함께 종합적인 요금체계 개편을 모색해야 한다"며 "장기적으로는 발전 믹스 조정, 특히 원자력 비중 확대도 하나의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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