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뷰] 천만 돌파 축배…잔을 든 손목이 가볍지 않은 이유

최송희
 
2년 만에 들려온 1000만 소식에 모두가 축배를 들지만 잔을 든 손목이 가볍지만은 않다.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개봉 31일 만에 1000만 관객을 돌파한 데 이어 3월 18일 기준 누적 관객 수 1372만명, 누적 매출액 1324억원이라는 대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다. 가뭄 끝에 터진 경사지만 영화계 안팎에서는 이 화려한 축제가 '산업의 부활'이 아닌 '기형적 독점'의 연장선이 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화진흥위원회 '2025년 한국 영화산업 결산'을 살펴보면 지난해 한국 영화계는 외형과 내실 모두에서 심각한 침체를 겪었다. 관객 수는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면 2005년 이후 최저치인 4358만명까지 추락했고 상업영화 평균 수익률은 –33.13%라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1000만 영화' 한 편 없이 보낸 2025년은 한국 영화의 기초체력이 얼마나 바닥나 있는지를 고스란히 노출한 한 해였다.

한국 영화 침체 속에서 터진 '왕과 사는 남자'의 흥행은 분명 반가운 사건이다. 영화계가 이 작품에 거는 기대는 단순히 당장의 박스오피스 순위 그 이상이다. 고물가와 티켓값 인상 속에서도 대한민국 관객에게는 여전히 '1000만명'이 움직일 만큼 강력한 구매력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모든 영화가 흥행할 수는 없지만 '구매력의 확인'이 투자자들을 다시 영화판으로 불러들일 유일한 유인책이 된다. 

하지만 이 희망이 '산업 전체의 회복'으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현재 박스오피스 순위를 뜯어보면 '부익부 빈익빈'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17일 기준 '왕과 사는 남자' 매출액 점유율은 무려 77.9%에 달한다. 하루 12만명이 이 영화 한 편에 쏠리는 동안 박스오피스 10위권에 턱걸이한 영화의 일일 관객 수는 채 900명도 되지 않는다. 1위와 10위의 격차가 무려 130배를 넘는 기형적 구조다. 1000만 영화라는 거대한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 그 밑바닥 생태계는 작년보다 더 차갑게 식어버린 셈이다.

결국 1만5000원이라는 비싼 티켓값은 관객들에게 '실패하지 않을 한 편'만을 강요한다. "1000만 영화 한 편 봤으니 올해 극장 구경은 다 했다"는 식의 소비 패턴은 영화를 '다양한 문화 예술'이 아닌 '일회성 이벤트'로 전락시키고 있다. 이러한 '순환 체계의 고립'은 비단 영화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고용과 노동 시장의 불안정함이 낳은 콘텐츠 소비의 '초양극화'는 산업 전반의 기초체력을 갉아먹고 있다. 매출액 1300억원 뒤에 가려진 0.5% 점유율의 영화들을 외면한다면 한국 영화의 미래는 없다.

'왕과 사는 남자'가 열어젖힌 문이 단순히 '한 편의 기적'을 과시하고 닫히는 단발성 이벤트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한국 영화 산업이 지금 정말로 기다리는 것은 단 한 편의 기적이 아니라 그 뒤를 따를 '다음' 영화들의 활기찬 행진이다. 1000만 영화 한 편의 기록보다 더 시급한 것은 이 거대한 흥행의 온기가 중소 제작사와 허리급 영화까지 고르게 전달돼 '마이너스 33%' 수익률로 얼어붙은 투자 생태계를 다시 녹여내는 일이다. 한국 영화계의 진정한 봄은 한 편의 메가 히트가 아닌 다양한 영화들이 관객들과 만나는 '일상'이 회복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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