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경제가 복합위기 속에서도 구조적 체질 전환을 통해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현재의 저인구·저성장, 이란사태과 같은 국면을 단순한 위기가 아닌 '대전환의 시작'으로 보고 산업·금융 전반의 재편 흐름에 주목해야 한다는 진단이다.
"2026년, '대전환의 시대' 원년…AI 기술이 핵심 변수"
정신동 KB경영연구소장은 8일 서울 여의도 KB금융지주 본사에서 진행된 아주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동사태 이후 시장지표로만 보면 한국 경제는 유가·환율·금리가 모두 오르는 3중고를 겪고 있지만 이를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한국을 넘어 세계사적으로 시작된 대전환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난 80년이 규범에 의해 국제질서가 유지되는 '대안정기'였다면, 중국의 부상과 이로 인한 미·중 패권경쟁 이후 현재는 힘에 의한 질서로 재편되고 있다. 세계 경제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구조적으로 확대되는 대전환의 시대에 직면한 것이다.
정 소장은 "인구·기술·기후에 지정학 요인까지 더해지면서 글로벌 산업·금융시장에는 구조적인 큰 변화가 발생하고 있고, 올해는 이러한 대전환이 본격화되는 첫해가 될 것"이라며 "향후 5년이 매우 중요한 변곡점이 되고, 10년 뒤에는 승자와 패자가 분명히 갈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특히 그는 기술 변화를 핵심 변수로 꼽았다. 정 소장은 "100년 만의 기술혁명으로 인공지능(AI)이 등장했고, 이는 당초 예상한 것보다 큰 경제적 변화를 갖고 올 것"이라며 "생산성, 고용, 나아가 산업구조까지 바꾸고 있다"고 말했다.
과거 사례 살펴보니…"유가·환율 급등, 오히려 위기 극복 기회"
빠른 세계 변화 속에서 에너지 충격과 환율 상승도 과거와는 다른 측면이 있다. 정 소장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와 달리 현재는 원유 공급원이 다변화됐고 원유 의존도도 낮아졌다"며 "중동발(發) 에너지 충격이 있더라도 과거처럼 세계 경제를 심각하게 흔들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했다.
환율 상승 역시 위기 신호로만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상승이 우리나라 수출 확대로 이어져 위기 극복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며 "최근의 환율 상승도 수입물가 상승 등 부정적 영향이 있지만, 동시에 중국의 저가 수출공세로부터 국내 중소기업을 지켜주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달러 환율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1500원을 돌파했고, 환율이 적정 수준에서 관리될 필요가 있다는 인식에는 공감한다"면서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유출입 3종 세트' 등 대비책이 마련됐고 외화 건전성이 아직 양호하기 때문에 문제될 수준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중동사태 이후의 증시 급락에 대해서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봤다. 그는 "코스피는 지난해 6월부터 올 2월까지 131%, 특히 올 1~2월 중에는 48%가 급등했다"며 "이 같은 상승세를 고려하면 현재 코스피는 이란 전쟁을 빌미로 건전한 조정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모대출, 2008년 금융위기와 유사…시스템적 위기 없을 것"
최근 글로벌 금융시장에서는 사모대출 리스크가 확대되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과 비교되고 있다. 사모대출과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저신용 차주를 대상으로 하는 변동금리 기반 상품으로 △금리 상승 및 경기둔화에 취약하고 △고금리로 차주의 이자 부담이 크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선제적 금리인하에 나서기 부담스러운 상황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저금리 기조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 환경에서 규제·감독 공백을 틈타 규모가 급격히 커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그는 "2007년 초 서브프라임이라는 용어가 처음 등장했고, 뉴센트리파이낸셜이 파산하면서 글로벌 금융위기의 첫 징조가 나타났다"며 "사모대출은 지난해 10월 '바퀴벌레'로 지칭된 기업파산이 발생한 이후 점진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에서 유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시스템 리스크로의 확산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선을 그었다. 정 소장은 "현재는 강화된 은행 자본 규제가 적용 중이라 과거처럼 금융 시스템 전체로 리스크가 폭발하진 않을 것"이라며 "사모신용 부실이 일부 늘어날 수는 있지만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이미 시장과 당국이 해당 위험을 인지하고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도 과거와 다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미 인지된 위험은 더 이상 위험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사모대출은 관리 가능한 영역에 있어 시스템적 위기는 오지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리스크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남 중심 하락세 뚜렷…대세 하락 여부는 '글쎄'"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통계 기반으로의 조정 국면 진입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의 부동산 안정화 의지와 가격 부담이 맞물린 결과다. KB부동산이 전국 시가총액 상위 50개 단지를 바탕으로 산출하는 'KB선도아파트 50지수'는 이달 132.4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0.73% 떨어졌다. 선도아파트 50지수가 하락한 것은 지난 2024년 2월(-0.06%) 이후 2년 1개월 만에 처음이다.
정 소장은 "전체적으로 매물이 많이 쌓여있고 거래가 많이 사라지면서 가격 하락세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며 "특히 지난해 가격이 크게 상승한 강남권 주요 아파트를 중심으로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향후 집값 전망 역시 둔화했다. 이달 서울 매매가격 전망지수는 전월 대비 10.0포인트 내린 100.8을 기록했다. 지난 1월에 이어 2개월 연속 하락하며 기준선(100)에 다가섰다.
다만 시장 전체의 급락보다는 차별화된 조정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상승폭이 컸던 강남 3구 등 핵심 지역은 당분간 하방 압력을 받을 것"이라면서도 "그간 소외됐던 서울 외곽 지역이 키 맞추기를 하면서 전체적으로는 큰 폭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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