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더 이상 하나의 방식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총성과 미사일이 오가는 전장이 있는가 하면, 관세와 공급망, 통화가 충돌하는 또 다른 전장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하나의 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층위가 얽혀 돌아가는 ‘복합 전장’ 위에 서 있다.
중동에서의 긴장은 그 출발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경고와 미군의 해상 통제 움직임은 단순한 군사적 시위가 아니다. 호르무즈는 전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통로다. 이곳을 통제한다는 것은 곧 에너지 가격을 움직이겠다는 의미이며, 이는 곧바로 글로벌 물가와 금융시장에 충격을 준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군사적 긴장이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에너지 가격 상승은 단순한 비용 증가를 넘어 산업 구조와 통상 전략까지 흔든다. 에너지 비용이 오르면 제조업 경쟁력은 약화되고, 각국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무역 장벽을 높이게 된다. 군사 전선에서 시작된 충격이 통상 전선으로 확산되는 구조다.
이 지점에서 미국과 중국의 움직임이 맞물린다. 미국은 관세를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고, 중국은 아프리카 53개국에 대한 전면 무관세 조치를 통해 시장을 선점하려 한다. 표면적으로는 무역 정책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누가 글로벌 시장을 장악할 것인가’에 대한 경쟁이다.
여기서 미시적인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중동의 에너지 불안은 원자재 가격을 자극하고, 이는 제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제조 비용이 올라가면 기업들은 새로운 생산 거점을 찾거나 공급망을 재편하려 한다. 이 과정에서 관세와 무역 정책은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한다. 즉,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미·중 통상 경쟁을 더욱 자극하는 구조다.
반대로 통상 전선 역시 군사 전선에 영향을 미친다. 중국이 아프리카와의 무역을 확대하고 자원 확보에 나서는 것은 단순한 경제 전략이 아니라 에너지와 원자재 공급망을 안정시키려는 시도다. 이는 중동 의존도를 낮추려는 움직임과도 연결된다. 결국 군사와 통상은 서로를 보완하며 하나의 전략 체계를 형성하고 있다.
여기에 방산이라는 세 번째 축이 결합된다.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수록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는 방어 능력 강화를 서두르고 있다. 한국산 미사일 요격체계 도입 논의는 단순한 무기 거래를 넘어, 안보 불안이 곧 산업 수요로 전환되는 구조를 보여준다. 군사적 위험이 산업적 기회로 바뀌는 지점이다.
이렇게 보면 현재의 글로벌 상황은 세 가지 전선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군사 전선은 에너지와 안보를 흔들고, 통상 전선은 시장과 공급망을 재편하며, 산업 전선은 그 결과를 흡수하며 성장한다. 문제는 이 세 전선이 독립적으로 움직이지 않고 서로를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결합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경제는 이 복합 구조에 직접적으로 노출돼 있다.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상황에서 중동 리스크는 곧바로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미·중 갈등 속에서 수출 구조는 압박을 받고,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부담도 커지고 있다. 방산 수출은 기회가 될 수 있지만, 그것 역시 불안정한 국제 정세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대응 역시 구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에너지 리스크를 단순히 가격 문제가 아니라 ‘공급망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중동 의존도를 낮추고, 장기 계약과 대체 에너지 확보를 병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둘째, 통상 전략은 선택이 아니라 분산이 핵심이다. 특정 국가나 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다양한 지역과의 협력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 셋째, 산업 전략은 단순한 수출 확대를 넘어 기술과 방산, 에너지 산업을 연계하는 방향으로 전환돼야 한다.
기업의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공급망을 다변화하고 생산 거점을 분산시키고 있다. 한국 기업 역시 비용 중심의 단기 대응을 넘어,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려한 중장기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단순히 가격이 오르면 생산을 줄이는 방식으로는 대응이 어렵다.
정부 역시 정책의 일관성을 확보해야 한다. 군사, 통상, 산업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안 된다. 에너지 정책, 무역 정책, 산업 정책을 하나의 틀에서 조율하는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복합 전선에서는 정책의 분절이 곧 리스크로 이어진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느 전선에 서 있는가’가 아니다. 세 전선이 동시에 작동하는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읽고 대응하느냐다. 전쟁은 더 이상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전선에서의 선택이 눈에 보이는 결과로 이어지고, 그 결과는 우리의 물가와 금리, 산업 경쟁력으로 돌아온다.
지금 세계는 조용한 전쟁 속에 있다. 총성이 들리지 않는다고 해서 전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넓고 복잡한 전선에서 싸움은 이미 진행 중이다. 그리고 그 전선은 우리의 일상과 경제 한복판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
이제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는 이 전쟁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그리고 그에 맞는 준비를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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