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노동조합이 대규모 집회와 총파업을 예고하면서 전운이 감돌고 있다. 2년 전 창사 이래 첫 파업으로 반도체 생태계를 뒤흔들었던 악몽이 채 가시기도 전에 또다시 '파업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정점으로 치닫는 가운데 "경쟁사만 웃게 만드는 자해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는 오는 5월 총파업의 전초전으로 23일 평택캠퍼스에서 투쟁 결의대회를 강행한다. 이 같은 노조의 강공은 경영 불확실성과 반도체 실적 악화가 극에 달했던 2년 전 상황을 소환하며 업계의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
2024년 7월 삼성전자 노조는 임금 인상과 휴가 확대, 성과급 제도 개선 등을 주장하며 25일간 파업에 돌입했다. 당시 삼성전자는 메모리·파운드리·시스템 LSI 등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전체가 유례 없는 침체기에 빠져 있던 때다.
주주·투자자들 사이에서는 "삼성전자 정말 망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심심치 않게 회자됐다. 기술 격차가 좁혀지고 수익성은 악화되는 상황에서 파업까지 더해져 신인도가 바닥을 쳤다.
이번 총파업 위기는 2년 전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다. 최근 반도체 업황이 슈퍼사이클에 접어들었지만 주요 업체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삐끗하면 경쟁 대열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수조원대 손실은 물론 글로벌 고객사 신뢰까지 흔들리게 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고대역폭메모리(HBM)와 파운드리 시장은 적기 공급에 대한 신뢰가 생존의 핵심"이라며 "삼성이 수십년간 글로벌 빅테크들과 어렵게 쌓아온 파트너십이 노사 갈등이라는 내부 변수로 인해 무너져 내릴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전자와 달리 경쟁사들은 '무노조 경영' 기조 아래 초격차 기술 확보에만 전념하고 있다. 세계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를 비롯해 미국 인텔·마이크론 등은 안정적인 노사 관계 환경 속에서 정부의 파격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생산 라인 확충과 연구개발(R&D) 투자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이들은 삼성전자 노조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며 반사 이익까지 기대하는 모양새다. 실제 인텔과 테슬라는 한국 메모리 엔지니어들을 대상으로 파격적인 처우를 내걸며 영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이달 들어 마이크론 역시 한국 시장 내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해 국내 커뮤니케이션 강화 활동에 착수했다.
주요 외신들도 삼성전자 노조의 파업이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블룸버그는 "AI 주도권을 둘러싼 글로벌 패권 경쟁이 정점에 달한 시점에 발생한 심각한 악재"라고 진단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역시 "자동차, 컴퓨터, 스마트폰 등 반도체를 사용하는 산업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전 세계에서 메모리와 비메모리 사업 역량을 모두 갖춘 반도체 기업은 삼성전자가 유일하다"면서 "내부 갈등으로 스스로 발목을 잡는 것은 공들여 쌓아온 반도체 제국을 무너뜨리는 자멸적 선택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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