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산업 현장이 다시 거센 노사 충돌의 소용돌이에 들어가고 있다. 법원이 쟁의행위의 정당성에 제동을 걸었는데도 일부 노조가 파업 강행 방침을 굽히지 않으면서 생산 차질과 투자 위축 우려가 커지고 있다. 노사 갈등은 민주사회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법적 판단마저 무시한 대결은 산업 경쟁력을 훼손하는 자해적 충돌에 가깝다.
최근 삼성전자 노조는 평택사업장에서 대규모 집회를 열고 다음 달 총파업 돌입 계획을 재확인했다. 노조는 성과급 제도 개선과 초과이익 배분 확대 등을 요구하며 반도체 생산라인 중단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이에 대해 회사 측은 대법원 판례상 초과이익 배분 요구는 파업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놓고 협상 타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노동자의 정당한 보상 요구와 집단행동권은 헌법이 보장한 권리다. 그러나 모든 요구가 곧바로 파업의 정당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임금·근로조건과 직접 관련된 사안인지, 단체교섭 절차가 충실히 진행됐는지,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했는지 등 법률적 기준이 존재한다. 법원이 이를 판단했고, 그 판단에 따라 제동이 걸렸다면 우선 존중하는 것이 법치의 출발점이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파업이 벌어지는 산업의 성격이다. 지금 충돌이 예고된 반도체·첨단 제조업은 한국 경제의 핵심 버팀목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미국·중국 기술 패권 경쟁, 대만·일본의 공격적 투자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경쟁 압박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생산라인 중단 가능성을 협상 수단으로 반복 노출하는 것은 경쟁국에 시간을 벌어주는 일과 다르지 않다.
반도체 공정은 일반 제조업과 다르다. 생산 중단 뒤 재가동까지 시간과 비용이 크고, 납기 차질은 고객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한 번 흔들린 신뢰를 회복하는 데는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노사 모두 단기 승패에 몰두할수록 장기 손실은 커진다.
기업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성과 보상 체계가 불투명하거나 소통 구조가 경직돼 있다면 갈등의 씨앗은 회사 내부에 있다. 특히 사상 최대 실적기에도 구성원들이 성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불만은 누적될 수밖에 없다. 노조가 과도한 요구를 한다고 해서 경영진의 무감각까지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해법은 대결이 아니라 제도화된 협상이다. 첫째, 법원 판단이 나온 사안은 존중하되 세부 보상 체계는 교섭 테이블에서 다시 논의해야 한다. 둘째, 기업은 성과급 산정 기준과 미래 투자 계획을 투명하게 공개해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셋째, 노조는 생산 차질을 인질로 삼는 방식에서 벗어나 전문성과 지속가능성을 함께 논의하는 책임 있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넷째, 정부는 핵심 산업 노사 분쟁에 대해 조정 기능을 강화하고 예측 가능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권 보호와 산업 경쟁력은 대립 개념이 아니다. 안정된 고용도 결국 경쟁력 있는 기업에서 나온다. 기업이 무너지면 노동도 설 자리를 잃는다. 반대로 노동이 존중받지 못하는 기업 역시 지속가능하지 않다. 두 가치의 균형을 만드는 것이 선진 산업국가의 길이다.
법원 제동에도 파업을 강행하는 모습은 국민에게 공감을 얻기 어렵다. 기업 또한 법 논리만 앞세워 갈등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지금 세계는 기술과 속도로 경쟁하고 있다. 한국 산업이 내부 충돌에 발목 잡혀 있을 시간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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