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의 세계에는 오래된 신화가 있다. 적게 자고 많이 일하는 지도자가 유능하다는 믿음이다. 새벽까지 보고서를 읽고, 밤늦게까지 전화를 돌리며, 몇 시간 눈만 붙인 뒤 다시 일정에 나서는 모습은 종종 헌신과 강인함의 상징처럼 소비된다.
그러나 국가 운영은 개인의 근성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컨디션이 수많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지도자의 수면 부족은 더 이상 개인적 습관으로만 볼 문제가 아니다.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자신의 수면 시간이 “대체로 2시간에서 길게는 4시간” 수준이라고 밝힌 데 이어 “잠을 좀 더 잤으면 한다”고 말해 다시 주목받았다. 그는 정책 검토와 일정, 가족 간병과 가사 등으로 잠이 부족하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일본 정치권 일각에서는 건강 악화와 판단력 저하, 소통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역시 새벽 시간대 메시지와 돌발 발언, 강행군 일정으로 늘 화제의 중심에 선 인물이다. 최근 중동 정세와 관련한 연쇄 발언에서도 시시각각 바뀌는 메시지가 시장과 외교가에 적지 않은 혼선을 줬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제의 본질은 ‘몇 시간 잤느냐’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수면 부족이 판단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의학계와 뇌과학 연구는 오래전부터 수면 결핍이 집중력 저하, 충동성 증가, 감정 조절 실패, 위험 판단 오류와 연결될 수 있다고 지적해 왔다. 일반 기업의 최고경영자에게도 위험한 상태라면, 전쟁과 외교, 금리와 재난 대응을 결정하는 국가 지도자에게는 훨씬 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하루는 통상인의 하루와 다르다. 갑작스러운 안보 위기, 금융시장 급변, 대형 사고와 자연재해는 언제든 한밤중에 발생한다. 그 순간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사람의 몸과 정신이 이미 탈진 상태라면 국가는 불필요한 비용을 치르게 된다. 말 한마디로 시장이 흔들리고, 오판 하나로 외교 갈등이 커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여전히 ‘잠 없는 리더십’을 미화한다. 밤샘 보고, 새벽 회의, 과로 일정은 책임감의 증표처럼 포장된다. 하지만 이는 낡은 조직문화의 잔재에 가깝다. 피로를 견디는 능력과 국가를 운영하는 능력은 다르다. 오래 깨어 있다고 더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선진적 리더십은 시스템으로 피로를 관리한다. 참모 조직이 정보를 정제하고, 일정은 우선순위에 따라 조정되며, 지도자는 결정적 순간에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국가 운영은 마라톤이지 철야 경연대회가 아니다. 지도자가 직접 모든 서류를 읽고 모든 회의를 챙기겠다는 발상은 책임감처럼 보일 수 있으나, 실제로는 조직 불신과 비효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한국 정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대선·총선·지방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잠을 줄여가며 전국을 돌고, 당선 뒤에도 새벽 출근과 심야 보고를 성실함의 증거처럼 내세운다. 그러나 국민이 원하는 것은 피곤한 지도자가 아니라 준비된 지도자다. 다크서클이 아니라 정확한 판단이며, 강행군 사진이 아니라 안정된 국정 성과다.
지도자의 건강은 사생활이면서 동시에 공적 자산이다. 대통령, 총리, 장관의 컨디션은 국가 리스크와 연결된다. 따라서 충분한 휴식, 투명한 건강 관리, 합리적 업무 분담은 특혜가 아니라 책무다.
잠 못 자는 권력을 더 이상 미담으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수면 부족은 미덕이 아니라 경고 신호일 수 있다. 국정을 맡은 사람일수록 잘 쉬어야 한다. 국민은 지친 영웅이 아니라, 맑은 정신의 책임자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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