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Meta)는 인력의 10%를 감축하면서도 AI 인프라에는 연간 1,350억 달러라는 천문학적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대규모 조기퇴직을 단행했다. 표면적으로는 비용 절감이지만, 본질은 ‘노동의 자본 대체’다. 인간의 인건비를 아껴 AI라는 고도화된 자본재에 재투자하는 구조적 고착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번 감원의 핵심 타깃은 단순 노무직이 아닌 ‘중간층 지식노동’이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CEO는 “과거 대규모 팀이 필요했던 프로젝트를 이제는 뛰어난 소수가 해낼 수 있다”고 단언했다. 이 문장은 현대 노동시장의 가장 냉혹한 단면을 관통한다.
전통적인 조직은 ‘신입-중급-시니어’로 이어지는 견고한 숙련의 사다리를 가졌다. 신입은 기초 코딩, 데이터 정리, 문서 초안 작성 같은 소위 ‘잔업’을 수행하며 조직의 생리를 익히고 중급 인력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생성형 AI는 이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인 ‘기초 업무’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이러한 ‘진입의 부재’ 현상은 단순히 청년 실업이라는 수치에 그치지 않는다. 이는 조직 내부의 중간층 노화’와 ‘인적 병목(Bottleneck) 현상’이라는 치명적인 부작용을 야기한다.
현재 많은 기업이 AI를 도입하며 주니어의 역할을 없애고 시니어 위주의 고효율 구조를 지향한다. 하지만 유입이 끊긴 조직은 시간이 흐를수록 급격히 노쇠화된다. 새로운 감각과 파괴적 혁신을 수혈할 ‘젊은 세포’가 사라진 자리를 노련하지만 관성에 젖은 숙련공들이 채우게 된다. 결국 조직 전체의 역동성이 떨어지고,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는 유연성은 고갈된다.
더 심각한 것은 경험의 단절이다. 숙련된 전문가는 하루아침에 탄생하지 않는다. 수만 번의 단순 코딩과 수천 장의 초안 작성을 거치며 얻은 ‘지루한 축적’의 시간이 있어야 비로소 AI가 대체할 수 없는 고도의 판단력을 갖춘 리더가 된다. 그러나 AI가 주니어의 직무를 독점하면, 미래의 시니어가 될 인재들이 실무 역량을 쌓을 ‘훈련의 장’ 자체가 사라진다. 5년 뒤의 허리급 인력을 기대할 수 없고, 10년 뒤의 리더를 찾을 수 없는 ‘인재 공급망의 단절’이 예고된 셈이다.
이 변화는 한국 시장에서 이미 비명 섞인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 2026년 3월 기준, 청년 취업자는 41개월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특히 전문·과학기술 서비스업과 정보통신업의 일자리 감소분 중 약 89%가 2030 세대에 집중됐다.
AI가 전체 일자리를 파괴하기 전, “신입이 진입할 통로”부터 봉쇄하고 있다는 증거다. 과거 자동화의 안전지대로 여겨졌던 변호사, 회계사, 개발자 등 전문직군도 예외는 아니다. 계약서 검토나 리서치 등 주니어 단계의 직무가 AI로 빠르게 대체되면서, 신입 사원이 실무를 배우며 전문가로 거듭날 기회 자체가 증발하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의 대응은 “AI 교육 확대”라는 공급자적 마인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비극은 청년들이 AI를 몰라서가 아니라, AI 시대에 그들이 발을 붙일 ‘첫 번째 일자리’가 없다는 데 있다.
이제 정책의 패러다임은 단순히 AI 교육을 확대하는 차원을 넘어, 실질적인 ‘기회 구조의 재설계’로 나아가야 한다. 우선 AI 도입을 통해 막대한 생산성 향상을 이룬 기업들이 그 이익의 일부를 신입 채용과 실무 인턴십 유지에 재투자할 수 있도록, 파격적인 세제 혜택을 포함한 ‘청년 첫 직무 보장제’를 사회적 합의의 테이블에 올려야 한다.
동시에 기업과 정부는 기존의 단순 실행 위주 직무를 과감히 탈피해야 한다. AI의 결과물을 날카롭게 검증하고 고차원적인 문제를 정의하는 ‘AI-보완형 주니어 직무’를 새롭게 설계함으로써, 신입들이 기술에 매몰되지 않고 기술을 다스리는 법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여기에 실무 경험이 곧 자산인 전문직군을 중심으로 AI와 인간이 협업하며 전문성을 승계하는 ‘디지털 도제제도’를 결합해야 한다. 숙련된 시니어가 주니어를 멘토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유·무형의 비용을 국가가 과감히 보전할 때, 비로소 단절되었던 숙련의 사다리는 다시 이어질 수 있다.
AI 시대의 진정한 공포는 기술이 인간을 앞서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길을 잃는 것이다. 지금처럼 방치하면 AI는 기성세대의 생산성은 높이되 청년의 기회는 박탈하는 ‘세대 간 불평등의 증폭기’가 될 뿐이다. 사다리가 치워진 광장에서 청년들에게 위로를 건네기보다, 새로운 형태의 사다리를 놓는 일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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