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질문으로 시작해 답으로 완성된다. 질문이 사라진 정치에는 책임이 없고, 답이 없는 권력에는 신뢰가 없다. 그래서 선거는 단순한 경쟁이 아니라 검증의 과정이어야 한다. 시민은, 유권자는 그 과정을 통해 후보의 자격을 판단한다.
지금 서울시장 선거를 둘러싼 풍경은 그 본질에서 멀어져 있다. 정원오 후보는 양자토론의 장에 서지 않고 있다. 언론단체의 요청에도 응하지 않는다. 정원오 후보에 대한 최근 상황을 보면 토론이 불안한 자리일 수 있겠구나 하는 입장을 이해할 순 있다. 그러나 그 불편함을 피하는 순간, 정치의 본령은 흔들린다. 검증을 회피하는 태도는 결국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키울 뿐이다. 시민이 묻고 싶은 것은 단순하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책임질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 서지 않는 정치인은 이미 절반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그의 상대, 오세훈 후보 측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치는 상대의 침묵을 깨우는 기술이 있어야 한다. 상대측의 헛발질에 대한 침묵을 깨우는 기술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침묵의 상대 질문은 더 집요해야 되고 쟁점은 더 또렷해져야 한다. 그러나 오세훈 후보 측 호준석 대변인의 최근 메시지는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문장은 있었으되 방향이 없다. 문제 제기는 있었으되 결론이 없다. 무엇보다 시민이, 유권자가 궁금해야 하는 핵심을 파고 들지 못했다.
호준석 대변인의 역할은 여기에 있다. 질문을 정리하고, 쟁점을 압축하며, 상대가 피할 수 없도록 길을 좁히는 일이다. 정치의 언어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여야 한다. 분노는 순간을 자극하지만 구조는 흐름을 만들기 때문이다.
4일 호준석 대변인이 내놓은 '양자토론 착착 피해가는 정원오' 메시지의 아쉬움은 바로 그 지점에 있다. 좋은 소재를 갖고도 그것을 하나의 칼날로 만들지 못했다. 질문은 흩어졌고, 압박은 약해졌다. 결과적으로 침묵은 깨지지 않았다. 정원오 후보는 피하고, 호준석 대변인은 묻지 않았다. 이 조합이 만들어 내는 것은 단순한 전략의 실패가 아니다. 그곳은 정치의 공백이다.
선거는 결국 시민의, 유권자의 시간이다. 그 시간은 가볍지 않다. 누가 더 화려하게 말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분명하게 책임지느냐를 가리는 과정이다. 그 과정이 흐릿해질수록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정치는 때론 단순해야 한다. 서야 할 자리에 서고, 물어야 할 질문을 끝까지 물어야 한다. 이 기본이 무너지면 도시는 방향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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