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유류세 인하와 석유제품 최고가격제 등을 통해 국제 유가 상승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현재 물가 흐름을 '안정'이라기보다 '억눌린 상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당장은 소비자물가 상승세가 제한적이지만 정책 효과가 약화하면 하반기 들어 '물가 쇼크'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10일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4월 두바이유 배럴당 평균 가격은 112.2달러로 전년 동월 평균(75.08달러) 대비 약 49.4% 상승했다. 이달 들어 103달러 선에서 움직이고 있지만 여전히 전쟁 이전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국제 유가와 원·달러 환율이 동반 상승하면서 수입물가 압력도 빠르게 커지고 있다. 원유와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국내 산업계 부담 역시 확대되는 모습이다.
다만 이 같은 비용 압박이 아직 소비자물가에 본격 반영되지는 않은 모습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로 2024년 7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지만 전년 대비 22% 폭등한 석유류 품목을 제외하면 1.8% 수준으로 떨어진다.
휘발유와 경유 가격 역시 각각 리터(ℓ)당 2200원, 2500원대까지 치솟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석유 최고가격제를 시행해 현재까지 5차례 가격을 조정하거나 동결했다.
실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비교해도 한국의 지난 3월 에너지 물가 상승률(5.2%)은 미국(12.5%), 독일(7.6%), 프랑스(7.1%) 등 주요국보다 낮았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이를 두고 "충격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뒤로 밀리고 있는 상태"라는 평가도 나온다. 고유가·고환율이 장기화되면서 정유사와 제조업체들이 수익성 악화를 감수하며 가격 인상을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유업계 부담 역시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평가다. 정부는 최고가격제 유지에 따른 정유사 손실 보전을 위해 추가경정예산까지 편성했지만 국제 유가 강세가 장기화하면 재정 부담 확대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연초부터 누적된 고환율·고유가 부담이 물가에 반영되는 시점에 정책 효과까지 약화되면 억눌렸던 가격 상승 압력이 한꺼번에 분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시장에서 정책 종료 시점을 최대 변수로 꼽는 이유다. 실제 유류세 인하 폭이 축소되거나 최고가격제가 종료됐을 때 억눌렸던 석유류 가격이 단기간에 급등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2021년 최고가격제를 시행했던 헝가리는 제도 종료 이후 연료 판매량이 50% 증가했고 파키스탄도 2022년 2월부터 5월까지 석유 가격을 동결했다가 해제 직후 휘발유 가격이 66% 폭등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단기적인 가격 억제에만 매몰되지 말고 단계적인 '출구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홍 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최고가격제는 단기적으로 가격 급등 억제와 소비자 부담 완화 효과가 있지만 장기화하면 품귀나 공급 왜곡, 제도 종료 이후 가격 반등 폭 확대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며 "연료비 비중이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한 표적 지원과 공급 안정성을 고려한 차별적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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