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제 유가와 원·달러 환율 상승에 더해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시장에 인플레이션 경계감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공급 충격과 재정 확대가 동시에 작용하면서 하반기 물가 상승 압력이 재차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모습이다.
14일 금융권 등에 따르면 최근 국제 유가는 중동 지역 긴장이 장기화되면서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수준에서 고공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오전 기준 브렌트유는 배럴당 105.72달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101.04달러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도 1490원대를 다시 넘나들며 수입 가격 부담을 키우고 있다. 이날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0.4원 오른 1491.0원에 주간 거래를 마쳤다. 전날에는 장중 1499.9원까지 치솟으며 1500원대 진입을 위협하기도 했다.
수입물가 부담은 이미 빠르게 확대되는 흐름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3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6.1% 급등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월 이후 28년 2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이다. 원유·가스·원자재 가격 상승은 시차를 두고 생산자물가와 소비자물가를 밀어올릴 가능성이 크다.
중동발 공급 충격이 본격 반영되면서 생산 단계 물가도 빠르게 오르고 있다. 지난 3월 생산자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6% 상승하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직후인 2022년 4월 이후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다. 원재료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소비자물가 상승 압력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실제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6%로 전월(2.2%)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채권시장에서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이르면 5~6월 중 다시 3%대를 기록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국제 유가와 환율 상승에 따른 수입물가 충격이 시차를 두고 공공요금·외식·가공식품 가격 등에 반영되면 하반기 고물가 흐름이 재차 강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지욱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7월까지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상단에서 형성되는 가운데 근원물가도 점차 상승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임재균 KB증권 연구원 역시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쉽사리 타결되지 않고 있다”며 “호르무즈 해협이 개방되더라도 원유 수급이 전쟁 이전 수준으로 정상화되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고유가에 따른 물가 부담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확장 재정 기조까지 더해지며 시장에 경계심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정부는 경기 방어를 위해 26조원 규모로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는 등 적극적인 재정 정책을 이어가고 있다. 다만 향후 국채 발행 확대와 시중 유동성 증가가 맞물리면 기대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실제 유동성은 증가세다. 한국은행 ‘3월 통화 및 유동성’에 따르면 광의통화(M2)는 전월 대비 18조5000억원 증가하며 다섯 달 연속 확대됐다. 금융시장에서는 투자 대기 자금과 단기 부동자금이 다시 늘어나는 흐름도 감지되고 있다.
최근 장기 국채 금리가 빠르게 상승하는 것도 이러한 기대를 반영한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장기금리가 오르면 기업들의 회사채 발행 금리와 금융권 대출금리도 함께 상승하게 된다. 이는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과 이자 부담을 키우고, 결국 제품·서비스 가격 인상 압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채 금리 상승은 정부의 재정 부담 확대 가능성으로도 이어진다. 이자 비용 증가가 추가 국채 발행으로 연결되면 금리와 물가가 서로를 밀어올리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신성환 전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지난 11일 “물가 압력이 상당히 크고 향후 물가 불확실성도 높다”며 “미국 장기금리 상승 영향과 함께 기대인플레이션, 재정발 인플레이션 우려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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