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바이오로직스를 둘러싼 노사 갈등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면서 바이오 업계 안팎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례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태를 단순히 한 기업의 임금 협상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곤란하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국 바이오 산업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다. 이 회사의 경쟁력 저하는 곧 K-바이오 전체의 신뢰 문제로 연결된다. 특히 중국과 일본 기업들이 무섭게 추격하는 상황에서 노사 갈등 장기화는 한국 바이오 경쟁력 약화라는 더 큰 후폭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
글로벌 바이오의약품 CDMO(위탁개발생산) 시장은 사실상 전쟁터에 가깝다. 한국 기업들이 압도적인 성장세를 보이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일본과 중국 기업들의 추격 속도가 심상치 않다. 일본 후지필름은 공격적인 투자로 유럽 최대 규모 수준의 바이오 생산시설을 구축하며 단숨에 글로벌 생산능력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중국 CL바이오로직스 역시 막대한 자본력과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생산시설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한 생산량 경쟁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국과 일본 기업들은 규모뿐 아니라 기술과 서비스 영역까지 확대하며 글로벌 고객사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글로벌 고객사들은 언제든 더 안정적이고 더 유연한 생산처로 이동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시점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사 갈등은 단순한 내부 문제가 될 수 없다. 바이오 CDMO 산업의 핵심은 결국 ‘신뢰’이기 때문이다. 글로벌 제약사들은 단순히 생산시설 규모만 보고 계약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안정적인 공급 능력이다. 생산 공정이 흔들리지 않고, 납기를 맞추며, 어떤 상황에서도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본다.
바이오 생산은 일반 제조업과 본질적으로 다르다. 세포를 배양하는 과정은 24시간 실시간 관리가 필수다. 공정 중단은 단순한 생산 지연이 아니라 제품 전체 폐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규제기관 승인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래서 글로벌 고객사들은 생산 안정성을 무엇보다 민감하게 본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세계 최대 수준의 CDMO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안정성과 신뢰가 밑바탕에 자리해 있는 셈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노조는 지난 4월 부분 파업, 5월 1~5일 전면 파업에 이어 6일부터 준법 투쟁에 들어간 상황이다. 정부의 중재 아래 사측과의 대화도 진전이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1인당 격려금 3000만원 지급, 평균 14% 임금 인상, 영업이익 20% 성과급 배분과 공정한 인사기준 수립 등이 노조의 요구안이다.
현재 진행 중인 준법투쟁은 휴일·연장 근무를 거부하는 형태로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되는 쟁의 행위다. 당장 생산라인이 완전히 멈춰서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현재 상황만 놓고 보면 손실 규모를 정확히 추산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나온다. 그러나 바이오 산업의 특성을 고려하면 눈앞의 손실액보다 ‘예상치 못한 변수에 대한 대응 능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더욱 문제다.
바이오 생산 현장에서는 갑작스러운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글로벌 고객사의 긴급 물량 요청이 들어올 수도 있고, 생산 일정 조정이나 돌발 대응이 필요한 경우도 생긴다. 공정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잔업이나 휴일근무가 불가피한 상황도 적지 않다. 문제는 현재와 같은 준법투쟁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이런 대응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점이다.
CDMO 산업은 결국 고객과의 신뢰가 절대적인 산업이다. 고객사가 원하는 시점에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노사 갈등으로 인해 생산 유연성이 떨어지고 긴급 대응 능력이 약화된다는 인식이 퍼지는 순간 글로벌 고객사들의 불안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글로벌 빅파마들은 생산 차질 가능성을 매우 민감하게 바라보고, 공급 불안 조짐이 보이면 대체 생산처를 검토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더욱 큰 문제는 바이오 산업에서 한번 흔들린 신뢰는 회복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수년간 어렵게 쌓아온 고객 관계가 단 한 번의 공급 차질 우려만으로도 흔들릴 수 있다. 특히 지금처럼 일본과 중국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고객 확보에 나서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쟁사들은 한국의 노사 갈등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고객사 입장에서도 굳이 리스크를 감수하기보다 안정적인 공급망을 선택하는 것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 지금 필요한 것은 감정적 대립이 아니라 산업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이다. 노동자의 권리는 존중받아야 한다. 정당한 보상 요구 역시 필요하다. 그러나 바이오 산업은 일반 제조업과 달리 국가 전략산업 성격이 강하다. 반도체 공장이 흔들리면 국가 경제 전체가 영향을 받듯, 바이오 생산 차질 역시 국가 산업 경쟁력과 직결된다. 노사 모두가 산업의 미래를 함께 지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필요한 이유다.
지금 글로벌 CDMO 시장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일본과 중국 기업들은 막대한 투자와 공격적 전략으로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글로벌 시장의 변방에 가까웠던 K-바이오는 과감한 투자와 기술 축적, 생산 경쟁력을 바탕으로 세계 정상권까지 올라섰다. 이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외부 경쟁자만이 아니다. 내부 균열이 산업 경쟁력을 흔드는 순간, 그동안 어렵게 쌓아온 기회와 신뢰는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그 피해는 단순히 삼성바이오로직스 한 기업에 그치지 않고, 곧 K-바이오의 산업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를 바이오 산업 전체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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