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원칙·상식] 이억원의 포용금융 선언…배제의 금융에서 재기의 금융으로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포용금융 전략 추진단’을 다음 달 출범시키겠다고 밝혔다. 금융사 안에 ‘포용금융 최고책임자’를 두는 방안, 신용평가 방식 개선, 건전성 규제 합리화, 연체채권 관리 강화 등이 논의 대상이다. 상록수 사태를 계기로 장기연체채권 추심 구조와 금융 소외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겠다는 취지다. 방향은 옳다. 다만 중요한 것은 선언이 아니라 실행이다.
 
 
금융은 단순히 돈을 빌려주고 이자를 받는 산업이 아니다. 자본주의의 혈관이고, 개인에게는 재기의 사다리이며, 기업에는 성장의 연료다. 금융이 제대로 작동하면 자본은 생산적인 곳으로 흐른다. 반대로 금융이 왜곡되면 돈은 부동산과 단기 수익에 몰리고, 실패한 사람은 다시 일어설 기회를 잃는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용금융 등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2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포용금융 등 설명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역사를 보아도 금융은 문명의 성장과 함께했다. 중세 이탈리아의 은행업은 상업도시를 키웠고, 산업혁명은 장기 자본 공급 없이는 불가능했다. 미국이 세계 경제의 중심에 선 배경에도 달러 체제와 깊은 자본시장이 있었다. 금융은 언제나 신뢰와 미래 가능성에 투자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한국 금융은 오랫동안 안정과 건전성에 치우쳤다. 물론 금융 시스템의 안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안정만 강조하다 보면 금융은 새로운 기회를 만드는 역할보다 위험을 피하는 조직이 된다. 과거 연체 이력이 있으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고, 담보가 없으면 창업자금도 빌리기 힘들다. 금융이 사람의 가능성보다 과거의 실패만 보는 순간, 포용은 사라진다.
 
 
상록수 사태가 던진 문제도 여기에 있다. 장기연체채권이 헐값에 거래되고, 채무자는 오랜 시간 추심 압박을 받는다.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채권 회수의 논리일 수 있지만, 사회 전체로 보면 소비와 재기의 가능성을 줄이는 비용이다. 금융이 사람을 살리는 제도가 아니라 끝까지 몰아붙이는 시스템으로 인식되면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도 무너진다.
 
 
해외에서도 금융 포용은 중요한 정책 과제다. 미국의 지역재투자법(CRA)은 은행들이 영업 지역의 저소득·중간소득 계층 신용수요를 충족하도록 장려하는 제도다. 영국의 빅소사이어티캐피털은 사회적 투자 시장을 키우기 위한 도매 투자기관으로 출범했다. 모두 금융을 단순 수익 산업이 아니라 사회 기반 인프라로 본다는 점에서 시사점이 있다.
 
 
다만 포용금융이 복지금융으로 흐르면 안 된다. 금융의 기본은 신용과 책임이다. 리스크를 무시한 지원은 결국 부실과 도덕적 해이를 낳는다. 진짜 과제는 시장 원리를 유지하면서도 금융 배제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려면 신용평가부터 바뀌어야 한다. 한 번의 실패가 평생 낙인이 되는 구조를 고쳐야 한다. 통신비 납부, 소득 흐름, 사업 지속성, 플랫폼 거래 이력 등 다양한 데이터를 활용해 사람의 회복 가능성을 평가해야 한다.
 
 
금융회사 지배구조에 포용금융을 반영하겠다는 구상도 의미가 있다. 은행과 금융지주는 단순한 민간기업이 아니다. 국민 예금과 공적 신뢰를 기반으로 영업한다. 그래서 더 높은 사회적 책임이 요구된다. 하지만 책임만 강요해서도 안 된다. 금융사가 포용금융을 지속하려면 수익성과 건전성을 함께 지킬 수 있는 인센티브 구조가 필요하다.
 
 
국가 차원에서는 포용금융을 서민 지원 정책에만 가둬서는 안 된다. 이는 성장전략이어야 한다. 청년 창업, 지역경제, 재도전 기업, 신산업에 돈이 흐르게 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의 힘은 실패를 용인하는 금융 생태계에서 나왔다. 한국 경제가 저성장과 인구 감소를 넘어서려면 금융이 담보 중심에서 가능성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산업 차원에서는 돈의 흐름을 바꿔야 한다. 부동산과 안정적 예대마진에 머무는 금융으로는 미래산업을 키울 수 없다. AI, 바이오, 우주항공, 에너지 전환 같은 분야에는 장기 자본과 모험자본이 필요하다. 포용금융은 취약계층을 돕는 문제인 동시에 새로운 성장 기반을 넓히는 문제다.
 
 
기업 차원에서도 금융회사는 고객을 위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장기 파트너로 봐야 한다. 포용금융은 비용이 아니라 미래 고객을 만드는 투자다. 사회적 신뢰를 얻는 금융회사만이 장기적으로 살아남는다.
 
 
결론은 분명하다. 금융은 약탈이 아니라 순환이어야 한다. 배제가 아니라 재기여야 한다. 단기 수익이 아니라 미래 가능성에 투자해야 한다. 이번 추진단이 보여주기식 조직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국가와 산업, 기업 모두 금융의 존재 이유를 다시 세워야 한다. 돈이 돈만 좇는 구조를 넘어 사람과 기업, 미래를 살리는 방향으로 흐를 때 한국 금융은 비로소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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