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사설 | 기본 원칙 상식] AI 가짜뉴스·안전 공방 난무한 지방선거…유권자의 상식이 필요하다

6·3 지방선거가 막판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선거판을 지배하는 것은 지역 발전 비전이나 민생 정책이 아니다. AI 가짜뉴스와 극단적 정치 공방, 과거사 논란과 흑색선전이 유권자들의 피로감만 키우고 있다. 지방선거가 지역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이 아니라 중앙정치의 대리전, 감정 동원의 플랫폼으로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22일 서울 동작구 이수역 출입구에 선거 벽보가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6.3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앞둔 22일 서울 동작구 이수역 출입구에 선거 벽보가 붙어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번 선거는 한국 정치가 본격적인 ‘AI 정치 시대’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경찰은 최근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폄훼하는 AI 조작 게시물과 허위 기사 형식 콘텐츠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생성형 AI로 만든 가짜 기사와 허위 이미지, 왜곡 영상이 SNS와 유튜브를 타고 확산되면서 사회적 혼란을 키우고 있다. 단순한 허위정보 수준이 아니다. 민주주의의 기본 토대인 ‘공통의 사실’ 자체를 흔드는 문제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런 현상이 점점 정치적 동원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선거는 조직과 자금, 방송과 거리 유세의 경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알고리즘과 조회 수의 경쟁으로 변하고 있다. 유튜브 쇼츠와 자극적 영상, 극단적 주장과 음모론이 정책 토론보다 훨씬 빠르게 확산된다. 플랫폼 기업의 수익 구조 자체가 분노와 자극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긴 설명보다 짧고 강한 감정 콘텐츠가 클릭 수와 체류시간을 늘리고 광고 수익을 키운다.


경제학적으로 보면 이는 전형적인 ‘주의(attention) 경제’ 현상이다. 플랫폼 기업의 핵심 자산은 공장이 아니라 사람의 시간이다. 문제는 인간의 주의를 가장 오래 붙드는 콘텐츠가 언제나 진실이나 균형은 아니라는 데 있다. 결국 민주주의가 숙의의 과정이 아니라 감정의 속도 경쟁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실제 해외에서도 비슷한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대선을 앞두고 조 바이든 대통령의 음성을 흉내 낸 AI 로보콜이 등장해 “투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퍼뜨렸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항복을 선언하는 딥페이크 영상이 유포됐다. 인도와 필리핀에서는 정치인의 AI 아바타와 음성 복제가 선거운동에 활용됐다. 기술 발전이 민주주의를 더 개방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만, 동시에 훨씬 더 위험한 선동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세계가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벌어진 안전 공방 역시 정치의 본질을 돌아보게 한다. 더불어민주당 정원오 서울시장 후보는 구의역 참사 10주기 현장을 찾아 오세훈 후보를 향해 “안전 불감증이 만든 구조적 문제”라고 비판했다. GTX-A 삼성역 철근 누락 논란까지 연결하며 안전 이슈를 전면에 내세웠다. 반면 오 후보 측은 정치적 공세라고 맞서고 있다.


안전 문제는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행정의 기본 책무다. 구의역 참사와 이태원 참사, 오송 지하차도 참사까지 한국 사회는 반복적으로 “설마 괜찮겠지”라는 안전 불감증의 대가를 치러왔다. 그런데도 선거철만 되면 사고는 서로를 공격하기 위한 정치 소재로 소비된다. 중요한 것은 누가 더 강한 표현으로 상대를 비난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시스템으로 사고를 예방하고 현장을 바꿀 것인가다.


정치권의 도덕성 문제도 유권자들의 실망을 키운다. TV조선은 더불어민주당 김용남 후보가 차명 형태로 대부업체를 운영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김 후보 측은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사실 여부와 별개로 정치권 전반의 신뢰 위기를 다시 드러낸 사건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서민 경제와 고금리 문제를 이야기하는 정치인이 동시에 고수익 대부업 논란에 휘말린 모습은 유권자들에게 깊은 냉소를 남긴다.


지금 한국 정치의 가장 큰 위기는 진영 대립 자체가 아니다. ‘신뢰 자본’의 붕괴다. 무엇이 사실인지, 누구를 믿어야 하는지 시민들이 점점 판단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정치인은 상대를 향해 거짓이라고 공격하고, 유튜브는 자극적인 영상으로 클릭 장사를 하고, AI는 가짜 이미지와 허위 기사를 무한 생산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결국 극단과 혐오만 살아남는다.


민주주의는 원래 인간의 이성과 상식을 믿는 제도였다. 그러나 AI와 플랫폼 시대는 인간의 감정보다 더 빠르게 본능을 자극한다. 정치가 정책 경쟁이 아니라 분노 경쟁으로 변하면 결국 피해는 시민에게 돌아간다. 지역 경제와 일자리, 교통과 안전, 주거와 복지 같은 진짜 문제는 뒤로 밀려난다.


그래서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결국 유권자의 상식이다. AI 가짜뉴스와 음모론, 과격한 정치 공세에 휩쓸리지 않고 무엇이 지역을 위한 정책인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한다. 정치권 역시 클릭 수와 자극적 메시지에 기대는 선거 전략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방선거는 중앙정치의 대리전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을 결정하는 생활정치의 무대여야 한다.


기술은 더 발전할 것이다. AI는 앞으로 더 정교해지고, 플랫폼의 영향력은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기술 자체가 아니다. 어떤 규칙과 윤리, 어떤 민주주의 원칙을 그 위에 세울 것인가다.


이번 지방선거는 단순히 누가 당선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가 상식과 숙의의 길로 갈 것인지, 아니면 알고리즘과 분노의 정치로 더 깊이 빠져들 것인지를 가르는 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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